전북 고창의 육용오리 농장에 이어 전남 순천만의 철새에서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정부는 22일 0시까지 전국 모든 가금 사육농가에 일시 이동중지(스탠드스틸) 명령을 발동했지만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13일 순천만에서 채취한 야생 조류 분변을 분석한 결과 고창에서와 같은 고병원성(H5N6형) AI 바이러스가 나온 것으로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H5N6형 AI는 작년 겨울부터 올해 4월까지 살처분 3787만 마리라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바이러스다.

순천만 철새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됨에 따라 전라남도는 21일부터 순천만 반경 10㎞ 지역에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순천만을 사실상 폐쇄하기로 했다. 순천만이 폐쇄되면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순천만 습지의 출입이 전면 금지된다.

AI 철새떼 공습… 순천만 전면 폐쇄
18일 올겨울 첫 AI가 발생한 고창 오리농가는 시설이 노후돼 비닐이 찢어지고 철새 등 야생 조류의 분변이 축사 지붕에서 다수 발견되는 등 관리·방역이 부실했던 것으로 농식품부 역학조사 결과 드러났다.

정부는 전북 고창 오리농가에 대한 역학조사에서 관리·방역 부실이 확인됨에 따라 해당 농가와 사육을 맡긴 축산기업(계열화사업자) 등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이번 발생 농장의 경우 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방역조치가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며 “오리 사육을 위탁한 축산기업 참프레에 어떤 조치를 내릴 수 있는지 면밀한 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일시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진 22일 0시까지 전국 모든 계열화 농가에 대해 철저한 점검을 한 후 추가적인 문제점이 발견되면 즉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학조사에서는 고창 오리농장을 출입한 사료차량 2대가 고창과 정읍에 있는 농장 10곳, 군산에 있는 사료공장, 김제·고창의 전통시장 등을 거쳐간 사실도 밝혀졌다. 농식품부는 10개 농장에 대한 긴급 검사 결과 9개 농장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 음성 판정이 나왔고, 나머지 1개 농장은 가금류가 없는 비어있는 축사였다고 설명했다. 군산 사료공장과 김제 전통시장 등에서도 현재까지 AI 감염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가금농가들은 철새가 도래하는 겨울철 초입에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점을 걱정하고 있다. 고창의 오리농가와 순천만 철새에서 검출된 H5N6형 AI는 닭에게 감염되면 전파속도가 빠르고 폐사율이 100%에 이르는 치명적 바이러스다. 작년 11월18일 전남 해남 산란계 농가와 충북 음성의 오리 사육농가에서 첫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 순식간에 전국으로 AI를 확산시킨 주범이다.

첫 AI 감염 사례가 나온 고창 오리농가는 철새도래지인 동림저수지에서 불과 250m가량 떨어져 있다. 이 저수지에는 가창오리 등 철새 20만 마리가 이맘때부터 내년 2월까지 날아들어 일시 서식한다. 대부분 AI 상시 발생국인 중국 등에서 한반도로 건너왔다.

대표적인 AI 전파 매개체로 꼽히는 철새가 도래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AI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저수지 반경 3㎞ 이내에는 4개 농가가 가금류 36만 마리를 기르고 있다.

정부는 겨울철 오리 사육을 일시 제한하는 휴지기제 대상 농가를 저수지 인접 농가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지난 3년간 AI가 두 차례 이상 발병한 농가를 중심으로 전국 89개 농가에 사육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고창 오리농가는 그동안 AI 감염 사례가 없었다는 이유에서 휴지기제 대상 농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치러지는 강원도에선 이미 주변 소규모 가금농가에서 수매·도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강원도는 아예 도내에 외부 가금류 반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방역당국은 전국 가금류와 축산인 등의 이동을 제한한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가 해제되는 22일 0시까지를 AI 확산의 중대 고비로 판단하고 있다. 만약 이 기간 중 다른 지역에서 AI가 발생하면 작년과 같은 ‘AI 대유행’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동중지 기간에 전국 전통시장에서 병아리 유통·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등 AI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