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르 코르뷔지에와 필로티
1965년 9월1일, 프랑스 루브르궁에서 한 건축가의 장례식이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20세기의 지성 앙드레 말로는 조사(弔辭)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미켈란젤로와 동급”이라고 업적을 기렸다. 그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다.

미국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건축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0세기 세상을 바꾼 3대 혁신가(‘이동혁신’ 헨리 포드, ‘정보혁신’ 빌 게이츠, ‘주거혁신’ 르 코르뷔지에)란 찬사도 얻었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롱샹 순례자성당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 있는 그의 작품 17건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기도 했다.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 한국 건축의 거목 고(故) 김중업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르 코르뷔지에의 관심사는 ‘저비용과 작은 공간으로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같이 살아가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도시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대규모 공동주택 모델을 제안했다. 마르세유에 지어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그가 설계한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다.

옥상에는 유치원 놀이터 정원이 있다. 벽면에는 빨강 파랑 등 경쾌한 색상이 추상화처럼 칠해져 있다. 가늘고 긴 창, 옥상 정원, 자유로운 파사드(입면), 자유로운 평면, 필로티(pilotis) 등 그가 주창한 ‘현대건축의 5원칙’이 잘 구현됐다는 평가다.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건축 양식인 필로티는 1층을 비우고 벽면 없이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방식이다. 춥고 습하고 채광도 좋지 않은 저층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1층은 주차장 등으로 활용된다. 이런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와 연립주택,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에 필로티 공법이 많이 활용된다.

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강진으로 필로티 구조물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피해 건물 중 상당수는 단독주택이나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다세대·다가구 주택이다. “1층에 벽면이 없어 진동에 약한 필로티가 피해를 키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필로티 구조가 지진에 취약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도 “설계와 시공 기준을 지켰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축 양식의 문제라기보다 철근과 골재를 제대로 넣지 않거나 강도가 떨어지는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도 필로티 건물이 적지 않은 것은 이를 대변해 준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