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능 연기, 재난대응 체계화 기회 삼자
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날이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다. 대학입시에 중요한 지표로 이용되는 수능의 중요성에 비춰 당연할 것이다. 지난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영어 듣기평가에 방해되지 않도록 항공기 운항시간까지 조정하는 우리나라로서 수능 연기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수능시험을 1994학년도 도입한 이후 하루 전날 연기된 사례는 없었다. 2005년과 2010년 국가 정상회의 같은 주요 행사로 1주일 연기한 적은 있다. 두 번 모두 9개월여 전에 사전 예고됨에 따라 큰 혼란은 없었다. 지진 같은 천재지변으로 수능시험이 갑자기 연기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앞선다.

현재 상황으로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인명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수능시험을 연기한 것은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1주일 뒤에 수능시험이 치러질 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미지수라는 데 문제가 있다. 교육부는 수능시험일 지진 관련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수능시험이 1주일 연기되는 과정은 아예 대응 매뉴얼에 나오지도 않는다. 지진발생 시 대응요령에는 진동이 멈춘 뒤 시험을 재개하고 수험생 안정시간을 고작 10분 내외로 명시하고 있다. 시험 당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고교 3년 내내 준비해 온 수험생들 처지에서는 충격과 혼란 이후 안정을 취하는 데 고작 10분 주어진다는 조치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당연히 수능시험 연기로 인한 입시 혼란과 일방적인 연기발표는 물론이고 1주일 내에 시험장소에 대한 안전진단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교육부에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부의 장·차관과 청와대 교육비서관,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금까지 입시업무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과 이런 비상상황을 해결해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지난 8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시험 변화를 너무 쉽게 생각해서 절대평가를 밀어붙이려다가 내년까지 1년 유예한 적도 있다. 1주일 연기된 수능시험과 이후 연속해서 영향을 받는 논술일정, 수시 합격자 발표, 정시일정, 추가모집의 전 과정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철저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입시 대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교육부가 안정적으로 대입일정을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이후 발생할 여진 등에 대비해 학교시설의 안전을 철저하게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고3 수험생들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인생을 결정할 수능시험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초·중·고부터 대학 입시까지 경험이 풍부한 교육전문가를 중심으로 대입 재난대응 태스크포스(TF)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입시제도는 생물과 같아서 공무원식 사고로 단순히 행정적 후속조치만을 하는 대상으로 접근한다면 전례없는 입시 대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교육부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철저한 대응계획을 마련해야 하며, 잘못된 정책과 대응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2차, 3차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양정호 < 성균관대 교수·교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