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든데… > 경기 성남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사진은 도시재생사업 전환을 거부하고 있는 성남 수정구 수진1재개발예정구역. 한경DB
< 소방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든데… > 경기 성남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사진은 도시재생사업 전환을 거부하고 있는 성남 수정구 수진1재개발예정구역. 한경DB
“무허가 판자촌에서 출발한 성남시 수진1동은 소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소형 자동차 한 대도 다닐 길이 없습니다. 전면 철거 방식으로 개발해야 주민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윤한교 수진1동 재개발준비위원회 위원장)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주로 수도권 재개발 추진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도로를 조금 넓히거나 공영 주차장을 설치하는 수준의 정비사업으로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규모 재개발이 도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외국 사례도 많은 만큼 재개발과 도시재생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하게 해달라”

지역마다 도시재생 사업을 거부하는 사정은 제각각이다. 재개발 수익성이 뒷받침되는 경기 성남시에선 노후주택 소유주들이 기존 계획대로 가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성남시는 지난 9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도시재생 업무 협약을 체결한 뒤 구도심 주거환경 개선 원칙을 기존 전면 철거 방식에서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재개발 예정지 10곳에 대해선 도시재생을 포함해 개발 방식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성남시는 태평2·4동과 수진2동을 이재명 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에서 해제한 뒤 도시재생 사업지로 전환했다. 이 일대 정비사업안은 9월 말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국비 50억원을 확보했다. 태평2·4동은 당초 3조4000억원을 들여 아파트 4688가구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사업 규모가 확 줄었다. 일부 주택 신축과 개·보수, 블록 단위 가로주택정비사업, 행복 관리사무소 신설 사업 등이 예정돼 있다.

주민들은 소규모 마을정비 사업은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하고 있다. 태평동 K공인 관계자는 “서울 강남 접근성이 좋고 분당, 판교, 위례와 인접해 인기 주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노후주택 소유주들은 분담금을 좀 더 내더라도 재개발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구역별로 민원이 1000여 건씩 몰리자 성남시는 도시정비계획 관련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성남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재개발만이 지역 활성화 대안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는 취지”라며 “설명회와 설문조사 후 대다수 주민이 원하는 쪽으로 개발 계획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개발 사업성이 탄탄한 서울에선 박원순 시장의 뉴타운·재개발구역 해제에 대한 반발과 신규 재개발 구역 지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가 역사성 등을 이유로 옥인1구역 등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하자 주민들은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서계·청파동 등에서 재개발구역 지정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재개발 수익성이 떨어지는 인천에서는 뉴 스테이 연계형 재개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개발이 요원하던 인천 지역은 뉴 스테이 연계형으로 정부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겨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부 지원이 사라지면 수익성이 부족해 사업이 전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마을 가꾸기식' 도시재생에 반발… 주민들 "전면 철거후 재개발하라"
◆도시재생 예산 확보도 차질

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 사업을 중앙정부 주도 또는 대규모 철거 방식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소규모 상향식(bottom-up)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 도시재생 사업지 절반을 가로주택정비·자율주택정비 등 ‘우리동네 살리기’로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1차 관문인 예산 확보에서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내년 국토부 예산 예비심사에서 도시재생 지원금(주택도시기금 융자)을 8530억원에서 7080억원으로 1450억원 삭감했다. ‘사업 수요 및 집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은 사업성이 낮아 재개발이 어려우면서도 주민 참여로 자립 활성화가 가능한 지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서울 접근성이 좋고 배후 주거지 역할이 큰 수도권 지역 등은 재개발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한결/이해성/조수영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