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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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 삼성전자 임원 및 비(非)전자 사장단 인사가 늦춰지면서 그 원인과 배경을 둘러싼 관측이 무성하다. 삼성 내부 및 다른 기업뿐만 아니라 관계, 법조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 인사가 웬만한 정관계 인사보다 더 주목받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일개 민간기업에 불과한 삼성 인사가 왜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삼성 임원이라는 직함이 지니는 상징성이 거론된다. 특히 애플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 제조업체로 등극한 삼성전자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한국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이 된다는 것은 샐러리맨으로서 성공과 출세의 정점에 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기 임원의 평균 보수는 48억3700만원으로 2위인 GS리테일(30억500만원)보다 20억원 가까이 많았다. 또 상무 이상이 되면 회사에서 중대형 세단이 제공되면서 해외출장 때 항공기 비즈니스석도 이용할 수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임원 명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해당 인물이 한국 경제계의 엘리트로 공인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 금융업계의 최고봉인 골드만삭스 파트너와 임원들이 월스트리트 직원의 선망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유력매체들은 지난 9일 골드만삭스 매니징디렉터(전무급 임원)로 승진한 509명의 명단을 모두 공개했다. 매년 그렇게 해왔다. 앞으로 월가를 끌고갈 파워 엘리트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등기 임원과 미등기 임원을 합쳐 1054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임원 숫자도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LG전자(313명) SK하이닉스(158명) 등 전자업계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많은 임원 하나하나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계 전반에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구매, 마케팅 쪽의 임원이 바뀌면 협력업체와 유통업계 대표들은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기 위해 발을 구른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마찬가지다. 기술 쪽 임원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새로운 흐름을 흡수하기 위해 평소 학계 등 전문가 그룹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규제권을 쥐고 있는 정부 관료들과의 인맥도 전통적으로 두터운 편이다. 법조계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삼성 인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퇴직자 거취를 집중적으로 묻고 다닌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삼성전자 법무팀 임원 출신은 웬만한 판·검사보다 인맥이 좋아 주요 법무법인의 영입 1순위”라고 전했다.

삼성의 대규모 인사는 연말·연초 인사를 준비 중인 다른 기업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삼성 인사 방향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때문에 다른 기업 오너,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삼성전자가 사장단 퇴출 기준으로 ‘만 60세 이상’을 삼았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부사장, 전무급에도 연령 제한이 있는지 탐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 뒤 조직개편 방향도 다른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스피드 경영’과 ‘권한 위임’을 표방한 삼성의 사업 조직이 산업계 흐름에 맞춰 어떻게 변신해가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