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동맹이란 무엇인가' 신중히 고민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맞춰 ‘인도-태평양(Indo-Pacific) 전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 전략에 의기투합했다고도 하고, 중국이 발끈하고 나섰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구체화한 개념이다. 미·일 동맹을 토대로 인도 호주 4개국이 인도양과 태평양을 에워싸 중국의 팽창주의를 억제해보자는 구상이다. 궁극적으로 4개국은 각료급회의는 물론 정상회의까지 창설한다는 계획이라니 구체화된다면 대(對)중국 안보포위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태평양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고나 할까.

아베가 이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건 집권 1기 때인 10년 전이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수정하지 않은 채 해석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행보를 키워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론 중국의 위협에 맞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중국과 맞서려면 헌법 개정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미·일 동맹 이상의 협력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베 생각이다.

아베의 손에 눈이 번쩍 뜨이는 논문 한 편이 들어온 건 2007년 1월이다. 인도 해군 출신 학자인 구르프리트 쿠라나가 한 저널에 게재한 ‘해양 라인의 안전: 일본-인도 협력의 희망’이다. 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연안에서 인도양과 서태평양을 가로질러 동아시아 연안에 이르는 해양 공간을 ‘자유와 법이 지배하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장’으로 규정하고 무역 투자와 인프라 정비는 물론 해양안보 협력을 추진하자는 외교 전략이다. 인도-태평양이란 개념의 첫 등장이다. 아베는 그해 8월 인도 의회 연설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며 외교 전략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젠 아베만의 생각이 아니다. 2010년부터 일본 미국 호주 고위급 정부 관리들이 이를 구체적인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호주 정부는 2013년 국방백서에 이 개념을 명시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지난 6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 협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4개국이 개념을 충분히 공유했다는 얘기다.

미국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아시아·태평양을 중시한다는 오바마 정부의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를 폐기했다지만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 터다. 힘을 덜면서도 중국의 확장주의에 맞서는 맹주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미국 내부에서도 일본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미·일 정상은 며칠 뒤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논의를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반발은 당연하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이보다 강한 태클은 없다. 누구도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거나, 미국이 더 괴로울 것이라는 등의 경고를 잇따라 터뜨리는 이유다.

중국도 분주하다. 왕이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베트남을 방문해 중국의 일대일로 참여를 약속받아냈다. 시진핑은 APEC 정상회의 직후 라오스와 베트남을 잇따라 방문하고 같은 기간 리커창 총리는 10년 만에 필리핀을 방문한다. 중국 서열 1, 2위가 동시에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구애에 나선 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 중국은 느닷없이 한국에 대한 사드 제재를 풀기로 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제재다. 한국은 대가로 한·미·일 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등의 소위 3불(不)의 약조를 해줬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균형 외교’라는 것이 북핵 대응을 위한 외교 다변화 노력일 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차원을 넘어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 인도-태평양 진영이 구축되면 아시아의 전략 지형은 크게 바뀔 것이다. 트럼프는 국회 연설에서 한국은 미래에도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은 며칠 뒤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일대일로 참여를 채근할 것이다.

무엇이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일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동맹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