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 '수중드론 전쟁'
미국 군수회사 보잉과 록히드마틴은 항공기 제작사로도 잘 알려졌다. 보잉은 대형 여객기인 점보제트기를 항공사에 공급하고 있고,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차기 기종으로 선정한 F-35 전투기 제작사다. 두 회사는 활동 무대를 바닷속으로 넓히고 있다. 하늘을 나는 무인항공기처럼 바닷속을 누비는 무인잠수함인 수중드론을 통해서다. 두 회사는 이달 초 미국 정부와 4320만달러 규모의 대형 수중드론 개발 계약을 맺었다. ‘오르카’로 불리는 이 수중드론은 짧은 기간에 먼 거리를 운항하는 것이 목표다.
해저 2만리 '수중드론 전쟁'
◆진화하는 수중드론

수중드론은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심해에 들어가 자원을 채취하거나 수중 케이블 작업 등을 대신하기 위해 사용됐다. 배에 탑승한 조종자가 화면을 보고 유선이나 무선으로 연결된 무인잠수로봇(ROV)을 조종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와 센서가 발전하면서 스스로 작동하는 자동수중로봇(AUV)도 등장했다.

한국도 2006년 한국해양연구원이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해미래를 개발한 데 이어 AUV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수중드론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다. 1980년대부터 ROV를 심해 탐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미 해군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군사적 목적으로 수중드론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파퓰러미케닉스는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개발할 초대형 수중드론(XLUUV)이 3200㎞를 항해할 수 있고 미사일 발사 등 군사용 목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도 수중드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카년(Kanyon)’이라 이름 지은 어뢰 모양의 수중드론 개발에 들어갔다. 이 수중드론은 도시 하나를 날릴 수 있어 ‘시티버스터’라는 별명이 붙은 10메가톤급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싣고 1만㎞를 항해한다.

해양강국인 일본은 1995년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수심 10㎞)에 ROV인 가이코를 내려보내면서 지구의 모든 해저 면에서 작동하는 수중드론 기술을 확보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신경망과 자동운항 기술까지 결합하면서 더욱 첨단화하고 있다.

◆수중드론 늘면서 세계 곳곳 분쟁

바다를 누비는 수중드론이 늘면서 더 깊은 심해와 광범위한 해역에 대한 인간의 시야도 넓어지고 있다. 스위스 비영리기관인 옥토퍼스재단은 소형 수중드론을 이용해 지중해에 가라앉은 약 74만 척의 난파선 위치를 찾고 있다. 프랑스 해안에서 아드리아해까지 광범위한 해역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물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발굴하겠다는 목표다. 어장 보호에도 수중드론이 본격적으로 투입됐다. 멕시코만에서 어장 보호 활동을 벌이는 단체인 코비는 ‘오픈ROV’라는 프로젝트로 수중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어장을 감시하고 있다.

한편에서 세계 곳곳의 바다는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고 있다. 수중드론은 핵잠수함에서 나오는 자기장 변화와 프로펠러 소음을 포착할 수 있어 잠수함 위치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지난해 12월 미 해군이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북서쪽으로 92㎞ 떨어진 남중국해에서 운용하던 연구용 수중드론을 중국 해군이 무단으로 가져가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은 이 수중드론을 5일 만에 돌려줬지만 미국 측은 계속해서 이 지역에서 탐사활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미국은 지난 9월 최초 수중드론 부대인 ‘UUVRON 1’을 창설했다. 중국 역시 7월부터 남중국해에 해양 조사용 수중드론 ‘하이이’ 12대를 동시에 투입하는 등 맞불을 놨다. 신화통신은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수중드론 대량 투입은 역대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