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채굴하라!…밤낮 없는 1천대 GPU의 굉음
올 6월 PC 시장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RX580’ ‘GTX1050’ 등 일부 그래픽카드(GPU)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많던 GPU는 다 어디로 갔을까.

10월10일 강원 강릉시 안현동에 있는 암호화폐 채굴장 TRC. 1층과 2층에 걸쳐 약 1000대의 암호화폐 채굴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상주하는 직원은 한두 명. 이마저도 없을 때가 있지만 기계는 TRC가 문을 연 2015년 이후 365일 24시간, 정전을 제외하면 멈춘 순간이 없었다.

“GPU 대란이 일었을 때는 정말 기계가 없어 못 샀죠. 그땐 우리도 꼬박 두 달을 기다렸어요.” 신명복 TRC 공동대표는 “지금은 가격이 많이 안정화됐지만 그때는 PC방에 들어가야 할 GPU까지 모조리 채굴에 끌어다 썼다”며 당시 GPU 품귀 현상을 설명했다.

시장을 뒤흔든 범인은 바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다. 한 달 새 5배가 오른 비트코인 외에도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 암호화폐를 채굴할 수 있는 기계인 GPU가 불티나게 팔렸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이더리움은 올초 10달러 선에 머물렀으나 4월부터 급등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6월 392달러까지 치솟았다. GPU의 품귀 현상 시기와도 일치한다. GPU는 암호화폐 블록체인의 알고리즘을 푸는 실질적인 일꾼이다. 채굴에는 이 밖에 부품이 연결되는 기판인 메인보드와 전력을 공급하는 파워 서플라이 등이 쓰이지만 ‘수익’과 직결되는 것은 해시를 도출해내는 GPU다.

TRC도 고성능 GPU를 이용해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생산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신 대표의 제안에 솔깃해 시작했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비트코인으로 전기요금이라도 건졌지만 다른 코인들은 무용지물이었죠. 그런데 비트코인의 채굴 난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채산성이 좋은 코인들을 찾다 보니 이더리움을 선택했고 기회가 찾아왔죠.” 이 회사의 경영을 총괄하는 문종혁 TRC 공동대표는 암호화폐의 회의론자에 가까웠지만 신 대표와 손잡은 이후 암호화폐의 예찬론자로 돌아섰다. 그는 “이더리움 가격이 안정기에 다다른 요즘에도 웬만한 금융 상품의 배 이상 수익이 나온다”고 말했다.

신 대표와 문 대표는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현장을 채굴 환경에 최적화했다. 1000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낮추지 못하면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기기의 오류 및 고장도 빈번해져 오히려 수익에 ‘마이너스’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채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선 냉방 전력의 효율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채굴 현장은 ‘전기 먹는 하마’로 잘 알려진 인터넷데이터센터(IDC)보다 7배 정도 열기가 세요. 채굴장 GPU의 열기는 섭씨 영상 60도를 넘나들죠. 이곳은 한여름에도 섭씨 영상 60도를 넘지 않도록 설계됐어요. 환풍 시설을 갖춰 차가운 바깥 공기를 내부로 끌어오고 방출된 열을 담아두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도록 공랭식 구조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TRC에서는 미팅룸 외에 에어컨 등 별도의 냉방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문 대표는 “채굴 작업이 상당한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열을 식히려고 냉방 시설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전기요금이 또 들어가 수익성이 맞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채굴 현장에서 3년. 두 공동대표는 앞으로 암호화폐의 채굴 시장이 더 대형화돼 개인 채굴자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 대표는 “채굴 기기가 많을수록 시너지 효과가 나는 구조”라며 “수천~수만 대를 운영하는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한 대형 업체에 개인은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도 이런 길을 걸었다.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문제의 난도가 높아졌고 지금은 채산성이 낮아지면서 대형 채굴 업체(마이닝 풀)를 중심으로 채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채굴 방식의 변화도 채굴자들에게는 비보다.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방식은 현재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작업 증명(proof of work) 방식에서 코인을 많이 오래 보유하도록 하는 지분 증명(proof of stake)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정채희 한경비즈니스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