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해봐야 알겠나…현대차 노조, 정신 차려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향해 ‘회사가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고 하는 말을 악담이 아니라 충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노조부터 퇴출될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자.”

1987년 현대차 노조 창립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가인 이상범 현대차 울산공장 문화감성교육팀 기술주임(60·사진)이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노조에 던진 메시지다. 이 주임은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1989~1990년)을 지낼 당시 임금·단체협상 결렬로 21일간의 파업을 주도했고 현대중공업 노조와의 연대투쟁도 처음 실행한 대표적 활동가다. 울산시의원(1998~2000년), 울산 북구청장(2002~2006년·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을 거쳐 퇴직 예정자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감성교육팀에 복귀했다.

그는 18일 자신의 블로그(blog.daum.net/jilgoji)에 2015년 2월 다녀온 독일 금속노조와 중국 러시아 체코의 현대차 해외공장 견학 보고서를 자기반성을 담아 올렸다. 그는 “이 보고서는 내 양심의 소리요, 참회의 글”이라며 “퇴직 전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당시 해외공장 견학에는 이 주임을 비롯해 윤성근(4대) 이상욱(9대) 이경훈(당시 위원장) 등 전·현직 노조위원장 다섯 명이 참가했다.

이상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문화감성교육팀 기술주임은 “해외공장이 국내공장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회사 측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볼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공장에 주목했다. 현대차 러시아공장은 2011년 1월 양산에 들어간 지 4년여 만인 2015년 100만 대 누적생산 기록을 세웠다. 이 주임은 “연간 20만 대 규모로 지은 공장에서 이처럼 빨리 100만 대를 달성한 것은 생산라인 속도와 인력 배치를 유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신차 개발을 마치고 설비까지 다 지어놓고도 ‘맨아워 협상’이라는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제때 신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내공장 현실과 비교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주임은 또 “러시아공장 생산직 초임이 110만원이고 상여금은 연말에 한 차례 100%밖에 안 되는데도 근로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수출, 생산성, 원가, 품질, 노사관계 등에서 해외공장이 유리하다면 경영자는 새 공장을 해외에 지을 수밖에 없다”며 “노조가 국내 고용불안 문제를 들어 해외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며 노사 협력을 통해 국내공장이 경쟁력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임은 또 “지금의 대립적 노사관계로는 회사 미래는 물론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도 걱정된다”며 “성과를 나누는 것에는 노사 간 이해가 충돌할 수 있다 해도 전체 몫을 키우는 문제, 즉 생산성과 품질, 원가 면에서는 노조도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독일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를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현대차 노조가 불공정과 차별의 시작이라며 거부하고 있는 인사평가 제도를 산별노조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의 금속노조가 회사와의 합의로 시행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주임은 “과거 현대차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생산현장 고과제 폐지를 내걸어 성사시켰지만 지금은 대다수 동료조차 함께 일하기 꺼리는 저성과자들을 인사와 급여에서 어떤 차등도 둘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승진 기피자까지 생길 정도로 회사 전체를 하향평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대다수가 인정할 합리적 평가기준을 마련해 체질을 개선하는 게 궁극적으로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