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브레이크 걸고 나선 의료·제약업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핵심으로 한 ‘문재인 케어’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제약업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재정 마련을 위해 의료 수가와 약가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최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이 총액계약제와 약가 인하를 제안하자 업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 백지화를 촉구하면서 정부와의 충돌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신포괄수가제·총액계약제 놓고 격돌

'문재인 케어' 브레이크 걸고 나선 의료·제약업계
의료계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총액계약제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총액계약제를 추진한다면 복지부 장관 퇴진운동뿐 아니라 대정부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13일 국감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총액계약제를 포함한 지급체계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총액계약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전에 의료공급자와 1년간 의료기관에 지출할 진료비 총액을 정해 계약하고 그 범위 안에서 진료비를 나눠 쓰는 방식이다. 정부가 한 해 동안 지급할 의료비를 예측해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면 수술, 처치, 문진 등 의료 행위별로 값을 매겨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다. 이 방식은 진료비 지출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총액계약제와 함께 질병별로 의료행위를 묶어 의료비를 정하는 신포괄수가제를 검토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선 지급구조 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의료계는 의료진의 자율성 박탈, 과도한 의료 사용량 통제, 의료 서비스 질 저하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오는 21일 국민건강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발대식을 열고 반대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제약업계 “재원마련 희생양 될 수 없다”

약가 인하로 문재인 케어의 건강보험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제약업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같은 날 “대한민국의 미래 핵심 산업인 제약바이오산업을 고사시키고 글로벌 진출의 시대적 흐름을 부정하는 방식의 약가제도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앞서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기(旣)등재 약 목록 정비와 복제약 약가 인하 등을 통해 10~25%까지 인하 여지가 있다”며 “5년간 최소 5조5000억원에서 13조8000억원까지 재정 절감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산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며 “정부가 산업 육성을 통해 보험재정을 절감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산업계와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 “확정된 것 없다”

정부는 총액계약제와 약가 인하 방안 등에 대해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건강보험료 인상보다는 의료 수가와 약가 인하 정책을 통해 문재인 케어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올해 57조5000억원이 소요되며 2022년까지 5년간 30조6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2019년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을 모두 사용하고 2억원 이상 적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로 의료비가 늘어나는 데다 급여화로 의료비가 낮아지면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눈에 띄게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의료계와 제약업계의 반발이 커지기 전에 상생할 건강보험 재정 마련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예진/이지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