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 커피왕국'의 민낯…도심은 일회용컵 '몸살'
10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의 한 길거리. 점심 식사를 위해 나온 직장인들이 마시고 남은 커피 잔을 근처 화단에 일렬로 세워 놓은 채 다시 일터로 향했다. 가로수마다 구겨진 일회용 컵이 눈에 띄었고 행인 발길에 차여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했다. 인근의 한 카페 직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앞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수거하고 있지만 양이 워낙 많아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버려지는 연 30억 개 테이크아웃 컵”

커피 소비가 급증하면서 쓰레기통은 물론이고 거리 곳곳이 일회용 컵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카페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테이크아웃용 커피 컵이 한 해 30억~40억 개에 달할 것이란 게 커피업계 추산이다.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쓰이는 종이컵까지 포함하면 매년 300억 개 규모의 일회용 컵이 버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회용 컵은 길거리 쓰레기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작년 6월께 40일 동안 강남대로에 비치한 10개 쓰레기통을 점검한 결과 하루 평균 625.14L의 쓰레기가 발생했는데, 그중 90%가량이 일회용 컵인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미화원들은 음료가 남아 질척거리는 일회용 컵 처리에 죽을 맛이다. 서울지하철 을지로역의 한 환경미화원은 “음료가 담긴 상태에서는 컵의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일일이 분리수거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자리걸음인 시민의식 탓에 서울시는 1995년 쓰레기종량제 실시와 함께 대폭 줄였던 길거리 쓰레기통을 다시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2007년 3700여 개로 줄었던 서울 시내 길거리 쓰레기통은 지난해 5640개로 불어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회용 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거리 쓰레기통의 90%는 일회용 컵

기본적으로는 커피산업의 급성장 때문이다. 2006년 3조원 선이던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지난해 8조7906억원으로 세 배로 커졌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국 카페 수만 9만2000여 곳(올 4월 기준)이다. 국민 1인당 한 해 커피 소비량도 500잔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환경부는 2008년 폐지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부활안을 이달 중 마련할 방침이다. 예전처럼 잔당 50~100원을 돌려주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2002년 제도 도입 때도 반납률이 30% 수준에 그치는 등 효과가 크지 않아 6년 만에 폐지했다. 직장인 최종문 씨(26)는 “카페가 손님으로 혼란스러운데 100원 돌려받자고 줄을 설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보증금을 무작정 높이기도 쉽지 않다. 보증금 액수가 너무 크면 커피값 인상 요인이 될 것이란 게 환경부의 우려다. 여성환경연대 관계자는 “적정한 수준의 보증금 책정뿐 아니라 자신이 쓴 일회용 컵은 스스로 처리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