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지난달 말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오는 30일 환경부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증인 신청 사유는 ‘하이트진로의 희망퇴직 등 노사관계’다. 하지만 박 회장은 3년6개월 전인 2014년 4월 하이트진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게다가 회사 측은 지난 3월 단행한 희망퇴직은 실적 하락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이트진로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8억원)보다 86% 급락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30개월치 임금과 자녀 학자금 지급 등을 조건으로 노사가 합의한 내용을 국회가 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사 합의로 '희망퇴직' 받았는데… 기업인 부르는 국감
◆증인 신청 사유 봤더니

오는 12일부터 31일까지 열릴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경제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민간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대거 불러 호통을 치고 망신을 주는 관행이 바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올 국감에서는 구조조정, 인수합병(M&A), 사업 제휴 등 민간의 자율적 경영활동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말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을 중소벤처기업부 국감장 증인으로 신청했다. 지난 4월 카카오가 이마트와 제휴해 내놓은 ‘카카오톡 장보기’ 서비스가 골목상권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카카오톡 장보기는 이마트 상품 구입 및 배송을 카카오톡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한 온라인 쇼핑 서비스다. 카카오 측은 이마트의 온라인 쇼핑몰은 그대로 두고 이마트에 카카오톡 플랫폼을 빌려준 카카오를 문제 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카오톡 장보기를 규제하려면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온라인 상거래도 똑같이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또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M&A 과정에서 “회사 기회를 유용했다”는 이유로 장동현 SK(주) 대표를 증인으로 호출했다. SK가 올해 SK실트론 경영권(지분 51%)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지분 일부(29.4%)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들인 것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전언이다. SK(주)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기회를 최 회장 개인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SK그룹 측은 오너 책임경영의 일환이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설사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행정부 감시를 우선시해야 할 국회 국정감사가 민간을 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간인 대신 공무원 불러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실명 전환’ 문제로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 전 부회장이 아니라 금융당국을 불러 따져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7년 전인 2010년 말 회사 고문에서 물러난 이 전 부회장에게 어떻게 연락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연철 한화 기계부문 대표(부사장)는 중소 납품업체인 에스제이이노테크의 태양전지 실리콘 기판 제조장비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으로 국감 증인으로 지정됐다. 한화 측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체 조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국감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경제계는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이 공정위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둘러싼 국회와 기업의 ‘암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오너와 경영진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한 뒤 나중에 증인 신청을 철회하는 대가로 기업들과 뒷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등으로 출판기념회에 기업인들을 부르는 관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증인 채택을 둘러싼 은밀한 뒷거래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전했다.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를 증인으로 부르는 관행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국내 석유화학업계 CEO들을 대거 증인 명단에 포함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입주한 기업들이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속내는 지역사회 기여 방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해당 기업들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읍소하자 슬그머니 증인 명단에서 빼줬다. 지난달엔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에서 작성한 ‘2017년 정무위 국정감사 주요 증인 요청 명단’이 외부로 유출돼 관련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대기업 총수를 포함한 기업과 금융회사 경영진 57명이었다. 이 명단은 해당 의원실 보좌관이 만든 초안으로 밝혀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일개 보좌관조차 기업인들을 제 입맛대로 부를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국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씁쓸해했다.

좌동욱/고재연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