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고 심야관광 활성화까지…일본, 소비 진작 '전력투구'
지난 25일 새벽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후타코타마가와역 인근에 자리잡은 대형슈퍼 도큐스토어. 밤 12시가 넘었지만 장을 보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 매장은 1년 내내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다음날 일본 언론들은 도큐스토어를 운영하는 일본 도쿄급행(도큐) 전철의 지난 4~9월 영업이익이 500억엔(약 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늘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일본 내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비 지표는 ‘아직’

소비는 흔히 일본 경제 부활의 마지막 남은 ‘퍼즐’로 불린다. 국내총생산(GDP)과 수출지표, 고용지표 등 주요 경제지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경기회복 수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소비지표만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백화점 매출 증가율은 2016년 1월 이후 20개월 중 16개월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매판매 증가율도 작년 11월 이후 플러스로 돌아서긴 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2%에 미치는 않는 게 대부분이다. 오르지 않는 물가는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올 7월 일본은행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의 1.4%에서 1.1%로 낮췄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취임하면서 물가 상승률 2% 목표를 2년 안에 달성하겠다고 공표했지만 목표 달성 시기를 무려 여섯 번이나 연기했다.

생필품 가격도 잠잠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식용유, 요구르트, 빵, 갑티슈 등 80개 주요 식품·생활 품목을 대상으로 8월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60%인 50개 품목의 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 수준을 밑돌았다. 2016년 8월 이후 13개월 연속 주요 생필품 절반 이상의 가격이 떨어졌다.

◆근검·절약의 역설

거시지표 개선과 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미스터리’의 원인을 일본 국민 특유의 근검·절약에서 찾는 일이 많다.

올해까지 일본 직장인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4년째 2%를 넘어섰다. 하지만 절대액수 기준으로는 임금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절약에 집중하는 사례가 많다. 7월 가계조사에서는 가구당 소비지출이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보다는 저축’이라는 특유의 경제관도 소비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제로(0)금리가 지속되고 있으나 8월 일본 시중은행 예금잔액은 684조엔으로 올 들어 4.5% 늘었다. 일본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서 국채를 매입해 돈을 풀어(양적완화)도 개인 소비와 주택 구입, 기업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예금이라는 형태로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 것으로 분석됐다. 장롱예금(약 43조엔 추정)까지 합하면 소비되지 않는 돈의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금고 전문업체 아이에스케이의 한 관계자는 “과거 20L 용량 제품이 주로 팔렸다면 최근에는 4억엔 이상 현금을 보관할 수 있는 50L 제품이 주력”이라고 말할 정도다.

◆갖가지 종합처방전

일본 정부는 소비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년 연속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25엔(3%·약 250원) 올렸다. 2002년 이후 최대폭 인상이어서 우려가 있지만 비정규직 소득을 높여야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고용시장은 종신고용 전통이 남아 있어 경기가 나빠도 인력을 줄이지 못하고 경기가 좋아도 임금을 못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임금 상승이 제한받는 상황에서 근로자 소득을 높이려고 일본 정부가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부터는 소비 진작과 근로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자는 명분으로 매월 마지막 금요일 기업과 관공서의 조기 퇴근을 권장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시행하고 있다. 외식과 여행 등이 늘어 소비가 진작되는 효과를 노렸다. 다이이치생명보험은 프리미엄 데이의 소비진작 효과가 1일 최대 1236억엔(약 1조261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에는 외국에 비해 일본의 ‘심야 놀이문화’가 취약하다고 판단해 관광객을 겨냥한 ‘밤놀이 경제 활성화’ 방안까지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심야교통편 확대와 24시간 지하철 운행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