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황당한 중국'이 부러운 이유
중국 공산당의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중국 지도부의 권력투쟁도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공산당 내 권력투쟁은 외부자가 보기엔 조용하게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목숨을 건 투쟁’이라고 중국 정치평론가들은 얘기한다. 하지만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천국’이 펼쳐진다. 공산당이 입법·사법·언론·산업·금융 등 전 영역을 지배하다 보니 정책을 펼치는 데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경제 규모가 독보적인 세계 2위 자리에 올라섰지만, 일부 분야의 정책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1월 증시 안정을 위해 도입한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되레 증시 폭락을 야기해 시행 4일 만에 폐기된 것이 단적인 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책 실패다. 올 들어 달러화 자금 유출을 막으려고 시중 은행들의 외환거래 총량을 규제한 것도 ‘황당한 규제’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과 투자은행(IB)들이 꼽는 중국의 최대 강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정책의 일관성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은 크게 5년에 한 번 발표되는 5개년 계획, 매년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발표되는 다음해 경제정책방향, 그리고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확정되는 그해 정부업무보고 세 가지를 통해 큰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중국 경제 분석가들은 이들 세 가지가 발표될 때마다 ‘숨은 그림 찾기’ 경쟁을 한다. 매번 발표된 정책이 그 이전과 비교해 달라지는 것이 거의 없어서다. 가령 작년 3월 발표된 ‘13차 5개년 계획’에서 제시한 국가 전략형 신흥산업 발전계획에선 차세대 정보기술, 첨단제조, 바이오, 녹색저탄소, 디지털 창의 5개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5년 전 제시한 7대 전략산업과 거의 비슷하다. 디지털 창의 하나 정도만 추가됐다.

중국의 또 다른 강점은 신중한 정책 집행이다. 중국의 경제 시스템에 큰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절대 전국 단위에서 갑작스럽게 시행하지 않는다. 한 도시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뒤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점→선→면’ 방식을 따른다. 2013년 9월 도입한 자유무역구제도는 최초 상하이 한 곳에서 시범실시한 뒤 점차 대상을 확대해 지금은 11곳까지 늘렸다. 이런 두 가지 장점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과 외국인 투자자는 중국 경제에 대해 일부 비관론을 펼치면서도 중국 정부의 정책 능력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중국이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적폐 청산’이 국정 운영의 키워드가 됐다. 전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새 정부 출범의 핵심 동력이었음을 감안하면 과거와의 ‘단절’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정 기조의 재설정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최대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간 일관성 있는 정책이 요구되는 분야에선 과거와의 단절이 ‘독(毒)’이 되기도 한다. 단지 전임 정부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폐기처분된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만난 한 중국 진출 기업인은 “공산당 일당 독재인 중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도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제고와 관련된 분야에서만큼은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윤 국제부 차장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