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유상증자 계획을 내놓은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주식 수가 대거 늘어남에 따라 주주가치 희석이 불가피한 데다 주주들이 증자 취지에 공감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명분이 부족한 일방통행식 유상증자 발표가 적지 않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상치 못한 유상증자에 우는 개미들
◆하림, 유상증자 발표에 18% 급락

하림은 26일 코스닥시장에서 770원(18.03%) 하락한 3500원에 장을 마쳤다. 전날 장 마감 직후 1035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게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회사 발행 주식(5394만5938주)의 61.2%에 달하는 신주가 오는 12월 시장에 풀리면 현재 354.7원 수준인 주당순이익(EPS·순이익/주식 수)이 220.1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전망이다.

주가가 장기간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갑자기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내놓은 점도 주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하림은 지난 5월26일 고점(종가 6190원)을 찍은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4개월 동안 43.5%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금 사용처가 분명하고 주주들로부터 필요성을 인정받았다면 이 정도까지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림은 유상증자 목적에 대해 설비투자 용도라고만 밝혔다.

이수그룹 바이오 계열사 이수앱지스도 전날 코스닥시장에서 24.25% 급락했다. 전 거래일이었던 지난 22일 장 마감 직후 공시했던 321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이 발단이 됐다. 이 회사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증자라고 밝혔지만 일반 주주들은 작년 연간 매출(191억원)보다도 많은 자금을 갑자기 조달한다는 데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명분 부족한 증자에 ‘후폭풍’

유가증권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6일 1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회사가 자금조달 목적을 뚜렷하게 설명하지 않자 증자 발표 다음날인 7일 하루 주가가 12.10% 추락했다.

주주들 사이에선 이 유상증자 결정이 이 회사 최대주주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가 에이블씨엔씨 지분 확대를 위해 내놓은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IMM PE는 앞서 공개매수를 통해 에이블씨엔씨 지분율을 90% 초반까지 늘릴 계획이었지만 응하는 주주들이 적어 57.25%만 확보하는데 그쳤다. 가라앉은 투자심리에 이 회사 주가는 6일 이후 26일까지 26.7% 떨어졌다. 이 날 회사는 증자규모를 1073억원으로 확정했다.

하림그룹 사료 제조기업인 선진도 유상증자 결정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7일 904억원 규모 유상증자 발표 이후 13거래일 만에 주가가 29.4% 떨어졌다. 이 회사 또한 공시를 통해 유상증자 목적이 설비투자 등을 위한 자금조달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주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유상증자 결정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성장이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결정이란 평가를 받은 기업은 유상증자 이후에도 주가 하락 폭이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8일 1875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한화손해보험은 이 같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증자를 통해 유입된 자금을 모두 운용자산으로 편입해 지급여력(RBC)비율을 개선하고 보유 계약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밝혔다. 한화손해보험의 26일 종가는 7790원으로 8일 이후 낙폭은 11.4%에 머물렀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