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90.9점, 한국 77.4점.’

현대경제연구원이 ‘4차 산업혁명’ 기반산업을 정보기술(IT) 서비스, 통신 서비스, 전자, 기계장비, 바이오·의료 5개 부문으로 각각 평가해 종합한 점수다. 각 부문의 기술 수준, 특허등록 건수, 연구개발(R&D) 투자액, 연구인력 규모, 정부지원금 현황을 토대로 했다. 한국은 중국(68.1점)에는 앞섰지만 미국(99.8점), 유럽연합(92.3점), 일본에 비해 점수가 크게 낮았다.
빅데이터·드론 배달…한국선 규제에 막혀 '반쪽 서비스'
각국은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찾느라 사활을 걸고 있다. 유병규 한국산업연구원장은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을 메이지유신에 버금가는 국가체제 변혁의 기회로 삼기 위해 비전을 수립하고 범정부, 범산업계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어떨까.

혁신 가로막는 규제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원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불만이 많다. 무엇보다 복잡한 규제 그물망이 기술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정부는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타협안을 내놓게 된다”며 “그러나 글로벌 경쟁을 하는 기업들은 해외와 동일하게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글로벌 기준과 다른 국내 기업 규제 사례’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정보 규제 △영리의료법인 규제 △항공 규제 △지주회사 규제 △금산분리 규제 등 다섯 가지 규제가 국내 기업들의 혁신과 기술 촉진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글로벌 혁신기업 구글이 해외엔 없는 규제로 인해 한국 내에서 하기 어려운 사업이나 투자는 총 17가지로 분석됐다. 상공에 거대한 풍선을 띄워 무선인터넷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룬 프로젝트’나 드론(무인항공기)을 활용한 배달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한국에서는 대형 풍선을 띄우려면 안전성 인증을 받아야 하고 정부로부터 사전 비행승인을 받아야 한다. 드론 역시 12㎏을 초과하면 비행 신고를 해야 하며 안전성을 인증받아야 한다.

인공지능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와 헬스케어 자회사 칼리코는 AI 의료 서비스와 유전자 연구 등으로 한국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된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벤처투자회사 GV와 캐피털G를 자회사로 두는 것도 한국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사안이다.

정부는 2015년 클라우드산업 활성화를 위해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세계에서 클라우딩산업을 지원하는 첫 사례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객 정보의 이전과 목적 외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법 논리가 그대로 적용됐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클라우드 서비스는 단순히 가상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해 가공, 분석하는 빅데이터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맞지 않는 지원책

기업들은 반도체산업에 대한 R&D 지원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분기당 수조원의 이익을 벌어들이기 때문에 수십억원, 수백억원에 그치는 정부 지원 자금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완성차업체들은 “선진국과 달리 정부가 전기자동차 인프라에 투자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내놓는다. 미래 성장산업 지원용 자금 배분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지원은 지난 수십년간 공급자(내부 조직) 중심의 지원 체계를 유지해오고 있다”며 “정부의 실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산업 중심으로 지원 조직과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