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타큐슈에 있는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야스카와전기의 연구원이 로봇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야스카와전기 제공
일본 기타큐슈에 있는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야스카와전기의 연구원이 로봇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야스카와전기 제공
자동차 기술 개발 업체인 일본 아자파와 리코는 국가전략특구인 아키타현 센보쿠시에서 다음달부터 자율주행자동차 실증실험을 시작한다. ‘설국(雪國)’으로 불리는 아키타 눈길에서 자율주행 능력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지난 7월 말 국토교통성으로부터 자율주행 서비스 실증 지역으로 선정된 이나시, 니미시 등 전국 여덟 개 지방자치단체도 조만간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집합체 중 하나다. 1990년대 초반 경제에 낀 거품이 꺼진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돌진하고 있다. 민·관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
'잘라파고스 20년' 더는 없다…일본, 4차 산업혁명 선점 칼 뽑아
‘잃어버린 20년’ 절치부심

일본 경제는 1990년 초반부터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0년 초반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이 급락한 데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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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업체들은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자신들만의 표준을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고립된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엔 히타치 도시바 파나소닉(산요 포함) 미쓰비시전기 소니 후지쓰 NEC 샤프 등 상위 여덟 개 전자회사의 영업이익 합계가 삼성전자 한 회사에도 못 미쳤다.

손잡고 사들이며 기술 확보

일본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겨냥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존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도요타는 올 2월 스즈키자동차와 제휴해 경차와 자율주행차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3월에는 통신업체 NTT와 5세대(5G) 기술을 활용해 차량용 초고속 무선통신기술 분야에서 손을 잡기로 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기업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바뀌었다”며 “마토마리(纏まり·결착)란 말 그대로 적극 제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감한 기업 인수합병(M&A)에도 나섰다. 110조엔에 이르는 상장사들의 현금성 자산이 실탄이다. 지난해 AI 등 관련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M&A가 347건으로 2012년에 비해 6.7배 증가했다.

구글식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으로 승부를 거는 기업도 나타났다. 소니는 AI 기술 개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12월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원조 하이브리드카 기술도 공개했다.

오므론(OMRON) 등 일본 업체 100곳은 이르면 2020년 IoT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매매하는 유통시장을 개장하기로 했다. 로봇이나 공작기계 등 일본이 강한 IoT 분야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 규제 혁파로 총력 지원

일본은 ‘신산업 구조 비전’이란 청사진과 ‘일본재흥전략’ 등을 통해 범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5월 발표된 신산업구조비전은 세계 기술이나 산업 방향, 주요 기업 전략 등을 분석한 뒤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스마트 생산·보안·물류·소매·농업 △스마트 생활(주택·에너지·도시) △건강 증진 등을 ‘전략적 추진 분야’로 지정했다. 아베 총리는 AI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해 AI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기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있다. 수도권인 도쿄 하네다공항 인근 지역을 자율주행차 실험특구로 지정해 자율주행차 실험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놓았다.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 먼저 신기술을 시험해 본 뒤 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시 중단하는 ‘샌드박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IT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정환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