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자금조달 안하고 가계만 빚 늘려
한은 돈 풀어도 부동산 등 특정부문에만 자금 쏠려

금융팀 = 최근 왜곡된 자금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로 인해 부동산 투기 등 특정분야에만 자금이 쏠리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 양극화가 심해졌고, 기업 투자 확대→이익 증가→임금 인상→가계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기술력 평가를 통해 우수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에 치중하며 '이자장사'에만 몰두하고 있다.

24일 한은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에 돈을 풀어도 잘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으로 인해 자금흐름이 왜곡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통화가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유통속도(명목 국내총생산/M2)는 1990년 1.51에서 작년 0.70으로 떨어졌다.

분기별로는 작년 4분기가 0.6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본원통화가 통화량을 얼마나 창출하는 효과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M2/본원통화)는 2008년 2분기 26.5에서 지난 2분기 16.3까지 떨어졌다.

예금회전율도 지난 2분기에 3.7회를 기록해 2014년 2분기(3.6회)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예금회전율은 월간 예금지급액을 예금의 평균잔액으로 나눈 것이다.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에 맡긴 예금을 인출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나마 유통되는 자금도 기업의 투자자금 등 생산적인 부문보다는 가계의 주택구매자금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주로 흘러들어 갔다.

지난 2분기 말 현재 가계가 예금취급기관으로부터 빌린 대출금 잔액은 935조원에 달했다.

작년 2분기 말(853조원)과 비교하면 1년 새 82조원이 급증한 셈이다.

하지만 예금취급기관이 기업에 빌려준 산업별 대출금 합계는 같은 기간 45조원이 늘었다.

금융회사가 1년 새 가계에 새로 빌려준 돈이 기업에 빌려준 돈의 2배라는 뜻이다.

이처럼 최근 시중 자금은 기업보다 가계로 몰렸고, 가계로 흘러간 돈은 집을 사는데 쏠렸다.

지난 1년 새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은 45조원 가량 늘었으니 가계가 빌린 돈의 절반 이상이 집을 사는 데 쓰인 셈이다.

2금융권을 빼고 은행만 보면 대출금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진다.

2분기 말 현재 은행이 가계에 빌려준 대출잔액은 630조원인데 이중 주택담보대출이 71%인 450조원에 달했다.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대기업은 은행 대출금을 1조1천억원을 늘리는 데 그쳤지만, 중소기업은 29조4천억원을 새로 빌렸다.

이렇게 돈이 돌지 않고 한쪽으로만 쏠리는 현상은 생산 부문에 적정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산업 발전을 지원한다는 금융 본연의 역할을 왜곡시킨다.

정작 자금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자금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반면 불필요한 부동산 투기 등에 자금이 몰리면서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흐름의 왜곡은 저금리 장기화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제대로 된 여신심사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자장사에만 치중해온 은행들의 책임도 크다.

금융당국도 자금시장의 이런 왜곡된 흐름을 바로잡아 생산적 부문으로 돈이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생산적 금융'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연말까지 금융업 자본규제나 자본시장 혁신 전략 등을 통해 시중 자금이 가계대출이나 부동산 시장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혁신·중소기업 등 생산적 분야에 공급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산운용시장의 신뢰성을 높여 부동산 자금, 단기 부동자금에 치우친 자본을 생산적인 투자로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