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 하고, 마이크 잡고…CEO까지 나선 '반포1 수주전'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열린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합동설명회에는 재건축 수주전에선 이례적으로 GS건설과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가 나란히 참석했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깜짝 행보였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과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이날 단상에 올라 1000여 명의 조합원에게 큰절까지 했다. 각 사에 30분으로 제한된 브리핑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도 실무진이 아니라 두 CEO였다. 이번 수주에 사활을 건 양사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총공사비만 2조6000억원에 이르는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전이 CEO 간 대결 구도로 번지고 있다. 이날 양사 CEO는 공사비 산출 내역서 공개, 공짜 이사비 논란 등 첨예한 쟁점들을 놓고 거침없는 설전을 벌였다.
큰 절 하고, 마이크 잡고…CEO까지 나선 '반포1 수주전'
◆“허풍 의심” vs “영업비밀”

양사가 각을 세우는 대표적 쟁점 중 하나는 ‘공사비 산출 내역서’ 공개 여부다. 임 사장은 “GS건설은 입찰 상세 내역서를 1600페이지에 걸쳐 조합원에게 공개했는데 현대건설은 250페이지만 제공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현대건설이 각종 특화 공사 금액이 이사비 포함 5026억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공사가 무슨 공사인지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 공사의 객관적 가치는 더 낮을지 모르는데 이를 공개하지 않아 시공사로 선정된 뒤 어물쩍 넘어가려는 ‘블러핑(bluffing·허풍)’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이날 공사비 내역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건설 고위관계자는 “한 권에 최소 250쪽 분량인 내역서 총 4권을 조합에 제출했다”며 “나머지 내용은 구체적인 자재 정보와 거래처, 단가, 인건비 등으로 개별 기업 노하우를 담은 정보여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짜 이사비 논란 여전

정 사장은 설명회에서 최근 위법성 시비가 불거진 무상 이사비 지급 관련 내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국토교통부가 이날 현대건설이 각 조합원에게 제공하기로 한 7000만원과 관련해 과도한 이사비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위배되므로 시정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국토부 지적을 수용하기로 했다. 정 사장은 “당초 조합원에게 약속한 7000만원씩 총 1600억원의 무상 이사비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며 “조합과 협의해 합법적인 다른 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22일 정 사장 명의의 ‘이사비 지급 보증의 건’이라는 공문을 조합에 보내 이행보증증권 제출 의지를 보였다.

GS건설은 이행보증증권도 현금과 다름없는 것인 만큼 현대건설이 사실상 이사비 지급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부의 시정 명령을 빠져나가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조합원 간 갈등도 고조

현대건설 설계안에 담긴 거대한 스카이브리지 ‘골든게이트’를 둘러싼 공방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GS건설은 도시계획시설 위에 지어지는 스카이브리지는 원천적으로 인허가가 불가능해 현대건설의 설계안으로는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자칫 연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못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인허가에 대한 사전 검토를 완벽하게 마쳐 문제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양사가 혈투를 벌이면서 조합원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지지하는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도록 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비방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조합원이 개설한 3~4개의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OO건설 알바 명단’이라며 실제 조합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어쨌든 몇 년이나마 얼굴 맞대고 산 동네 이웃인데 이렇게 대립각을 세우니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정선/선한결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