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더샵퍼스트월드' 모델하우스에 줄을 선 방문객들. 포스코건설 제공
'명지더샵퍼스트월드' 모델하우스에 줄을 선 방문객들. 포스코건설 제공
“남들 매 맞고 있을 때 같이 아픈 척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부산 명지동 H공인 관계자)

부산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달 초 집중 모니터링 지역으로 지정되며 사실상 경고장을 받았지만 ‘청약 광풍’이 식지 않고 있어서다.

22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전날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에서 청약을 받은 ‘명지더샵퍼스트월드’는 평균 청약경쟁률 139 대 1을 기록했다. 1648가구를 모집에 22만9734명이 청약통장을 냈다. 2000년대 들어 분양한 단일 아파트 가운데 가장 많은 청약자가 몰렸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모집공고문에 따르면 당첨자가 계약할 때 내야하는 내야하는 금액은 분양가의 20%다. 일반적인 아파트 분양 계약금이 10%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 높은 셈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강서구는 청약조정대상지역이 아니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인 까닭에 분양권 전매제한도 1년이 적용된다.

분양 조건만으론 단기 투기수요가 배제될 만 하지만 시장의 해석은 정반대다. 실수요자만으론 이 같은 경쟁률을 기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투기세력 유입을 점친다. 1순위 자격을 얻으려면 통장가입기간이 6개월만 넘으면 되는 데다 공고일 전까지만 부산으로 주소지를 옮기면 돼서다. 계약금 20%는 비율로 봤을 때 높은 수준이지만 가격으로는 전용면적 84㎡ 기준 5000만~6000만원대여서 서울 등과 비교하면 ‘저렴하다’는 평가다.

지역 내 투기수요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한 60대 남성은 “청약통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갔더니 ‘총알을 충전하러 왔느냐’고 물었다”며 “새 아파트로 전매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부산 전체에 팽배하다”고 귀띔했다. 손홍원(32·가명) 씨는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지인들과 청약일정을 공유한다”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넣는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부산에 공급된 아파트들의 청약경쟁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부동산 리서치업체인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청약경쟁률 순위를 따졌을 때 상위 10개 단지 가운데 7개 단지가 부산에 공급된 아파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e편한세상오션테라스’와 ‘대신2차푸르지오’는 평균경쟁률 258 대 1로 공동 1위였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초 ‘9·5 조치’를 발표하며 부산 16개 구·군 전체를 집중 모니터링 대상 지역으로 지정했다. 과열 기미가 보일 경우 언제든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운대·연제·동래·남·수영·부산진구와 기장군 등 7개 지역은 이미 청약조정대상지역이어서 이보다 높은 수준의 규제는 사실상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의미한다.

성남 분당구와 대구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됐을 당시 아파트매매가 상승률은 8·2 대책 직후(한국감정원 8월 7일 발표시점)부터 9월 4일까지 각각 1.15%와 1.14%였다. 이 기간 동안 아파트값 상승률이 1%를 넘어선 곳은 전국에서 이들 지역뿐이었다.

다만 부산 아파트가격은 9월 이후 -0.02% 하락해 꾸준히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민간택지 전매제한 기준이 강화되는 11월부터 이들 지역의 분양권 전매가 입주시점까지 제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 센터장은 “부산 지역 청약시장이 계속해서 과열 양상을 보일 경우 정부가 규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현지엔 자산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장년층이 많은 데다 이들의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두드러져 일정 수준의 경쟁률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