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도마 위에 오른 '소득주도성장'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화두는 ‘소득 주도 성장’이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득 주도 성장론은 국내 경제학계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14일 서울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대논쟁’ 국가정책포럼에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은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다음 정부 초엔 장기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김영식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은 공급 측면이 무시된 ‘반쪽’짜리 성장론”이라고 비판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원래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의 이론에 연유하고 있다. 칼레츠키는 1933년 《경기변동론》을 폴란드어로 출간하고, 영역본을 1939년 출간하면서 이 이론을 제시했다. 1936년 《일반이론》을 출간해 거시경제학 혁명을 일으킨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두 학자 모두 유효수요 부족을 당시 대공황으로 극심했던 불황의 원인으로 진단했지만, 케인스는 기업의 투자 부족이 유효수요 부족의 근원이며 경제활동의 핵심은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가의 동물적 근성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비해 칼레츠키는 소비 부진이 유효수요 부족의 근원이며 소비 부진은 국민소득 중 임금의 비중이 작은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대공황의 원인을 두 학자 모두 유효수요 부족이라고 진단했지만 기업 투자를 중시하는 우파와 소득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로 나뉜 것이다.
[뉴스의 맥] 도마 위에 오른 '소득주도성장'
실증되지 않은 '경제학의 이단'

칼레츠키는 경제주체를 기업가와 노동자로 구분하고 국민소득 중 기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윤과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의 비중, 즉 소득의 기능적 분배를 중시했다. 기업가의 소비성향보다 노동자의 소비성향이 높다는 전제 아래 임금 비중이 작을수록 유효수요가 부족해져 불황이 오므로 임금 비중을 높여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헝가리 태생 경제학자 니콜라스 칼도어 등 좌파 후기케인지언의 분배이론으로 계승됐다. 그러나 이 이론들은 경제주체를 기업가와 노동자로 구분하고 노동자의 소비를 중시하는 데다 폐쇄경제모형을 다루고 있고 실증적인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 투자와 그 결과 창출되는 고용을 중시하고 개방경제를 다루는 정통경제학에서는 수용되지 않은 채 경제학의 이단으로 분류돼 왔다.

그 후 캐나다 오타와대의 마크 라보이, 그리스 태생 케임브리지대의 필립 아레스티스, 이탈리아 피사대의 네리 살바도리 등 좌파 후기케인지언에 의해 꾸준한 연구가 이어져오다 근년에 국제노동기구(ILO) 주도로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이란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국민소득 중 소비성향이 높은 임금 비중을 높여서 소비를 진작시키면 ‘공평한 성장’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임금 주도 성장이라 명명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소득 중 이윤 중시인지 임금 중시인지 개념을 혼동하게 하는 소득 주도 성장(income-led growth)이란 모호한 이름으로 등장했다. 임금 주도가 갖는 기업가와 노동자 간 대립구도와 좌파적 이미지를 희석시켜보려는 비학문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땐 소득분배 악화

그러나 임금만 오른다고 해서 소득불평등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과도하게 오르면 이미 고용된 피용자 몫은 크게 증가하지만 신규 고용을 어렵게 해 실업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소득 중 임금의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이 급증하면 오히려 계층별 소득 분배가 악화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소득분배율이 크게 높아졌는데 계층별 소득분배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상승해 계층별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됐다. 이는 5년간 평균임금상승률이 예년보다 높은 6.6%를 기록해 이미 고용돼 있는 피용자 몫은 크게 증가했지만 신규 고용이 저조한 탓이었다. 특히 이 기간에는 당시 세계경제가 거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호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2010년부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이 증가하면서 계층별 소득분배도 개선(지니계수 하락)됐다. 이는 임금상승률이 2010~2016년 연평균 3.4%를 유지해 매우 안정적이었던 점이 중요한 배경이다. 임금상승률이 안정적이어서 고용이 늘면서 노동소득분배율도 증가하고 계층별 소득분배도 개선(지니계수 하락)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임금을 과도하게 높게 해서 기존 피고용자 소득을 크게 늘리고 신규 고용을 어렵게 하는 것보다 임금을 안정적으로 오르게 해서 신규 고용을 증대시켜 고르게 노동소득의 비율을 올리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ILO가 주장하는 ‘공평한 성장’이다. 임금 주도 성장이라고 해서 신규 고용을 어렵게 할 정도로 임금을 높게 올리면 오히려 기존 피고용자 몫만 늘려주고 실업을 증가시키는 ‘불공평한 성장’이 될 우려가 크다.

그뿐만 아니라 임금이 과도하게 오르면 투자가 줄어들거나 기업이 해외로 탈출하게 된다. 이미 ‘87년 체제’ 이후 1988~1993년 6년간 연평균 임금상승률이 20% 고공행진을 하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탈출 러시가 시작됐고, 2010년 이후 5인 이상 고용기업의 월평균 임금이 300만원을 돌파하면서 연평균 해외투자가 250억달러를 넘어섰다. 경제민주화가 시작된 2013년부터는 연평균 해외 투자가 300억달러를 넘어서며 과거의 노동집약 중소기업에서 이제는 자동차 반도체 등 자본기술집약 대기업이 해외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2016년 말 기준 6만5782개 한국 기업이 3488억달러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감내할 수 있는 임금 상승이어야

임금이 과도하게 오르면 개방경제에서는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 상실로 수출이 줄어들어 전체 임금몫이 적어질 수도 있다. 결국 임금 주도 성장에서도 임금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오르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남유럽이나 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도 과도한 복지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임금 주도 성장을 실험한 경우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금 재정부담을 넘어서는 복지에다 임금 주도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적용 범위 확대,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 생산성 제고를 위해 도입했던 성과연봉제 폐지 등이 몰아치고 있다. 자동차, 금융 등 일부 부문의 임금은 이미 선진국보다 높은데 생산성은 절반 수준이어서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는 만큼 이론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가설 수준의 주장을 실험하기에는 너무도 위험이 커 보인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