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택이 스크린과 필드까지 모두 평정하자 요즘 그에겐 ‘장타 비법’을 알려달라는 열혈팬이 크게 늘었다. “하체가 버텨주는 만큼 장타가 나온다”며 장타 요령을 시연해 보이던 김홍택이 미소를 짓고 있다. 포천=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홍택이 스크린과 필드까지 모두 평정하자 요즘 그에겐 ‘장타 비법’을 알려달라는 열혈팬이 크게 늘었다. “하체가 버텨주는 만큼 장타가 나온다”며 장타 요령을 시연해 보이던 김홍택이 미소를 짓고 있다. 포천=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스크린 고수가 필드 챔피언이 된다고? 에이~무슨 소리야.’

스크린 골프와 필드 골프의 격차 논쟁 결론은 대개 이런 식으로 끝나곤 했다. 스크린 골프는 게임이지 골프가 아니라는 주장과 스크린 싱글이 필드 백돌이라는 비약적 논리까지 대략 통했다. 적어도 2017년 8월27일 이전까진 그랬다. ‘작은 거인’ 김홍택(24·AB&I)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말이다. 김홍택은 이날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카이도시리즈 부산오픈을 제패해 파란을 일으켰다. 스크린 챔피언(4승) 출신으로 처음 필드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11일 경기 포천의 포천힐스CC아카데미에서 훈련 중이던 김홍택을 만났다.

하루 3000번 스윙… 손바닥 수십 번 새살

'스크린 골프계 타이거 우즈' 김홍택의 '하면 된다' 인생 반란
그는 오전에는 아카데미 야외 연습장에서 샷 연습을, 고객들의 라운딩이 다 끝난 오후 늦게부터는 포천힐스CC에서 실전 필드 훈련을, 밤에는 집 근처 스크린에서 코스 매니지먼트와 샷감 익히기를 한다. 그가 고안한 ‘3단계 하이브리드 연습법’이다.

“야구선수를 했던 아빠의 권유로 6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는데 재미를 못느꼈어요. 중학교 때부터 손댄 스크린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골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됐죠.”

필드 골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짧은 시간에 라운드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스윙 동작을 분석하고 식사를 현장에서 해결하면서도 하루 108홀까지 어렵지 않게 소화했다. 오래 가지 않아 ‘스크린의 리틀 우즈’라는 소문이 났다. “중학교 3년 때 어른들이 출전하는 스크린 대회에 나갔다가 덜컥 3등에 입상했어요. 알바트로스를 포함해 9홀에 7언더파를 쳤죠. 그때 짜릿한 성취감 같은 게 든 것이 이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때부터 ‘마이웨이’를 걸었다. 국가대표 포인트를 주는 아마추어 대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크린과 야외연습장을 오가며 비거리를 내는 방법에 몰두했다. 부상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접은 아버지 김성근 씨(포천힐스CC 골프아카데미 원장·51)가 사업을 제쳐두고 아들을 도왔다.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티칭프로 자격증과 클럽피팅 자격을 땄고, 물리치료사와 멘탈코칭 공부까지 따로 했다. 캐디도 그의 몫이었다. 김성근 씨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며 “혹독하게 스윙연습을 시켰다”고 말했다.

하루 3000개씩 스윙을 했다. 목표 거리는 400m. 손바닥 껍질이 모두 일어나 핏물이 흐르면 붕대로 감고 샷 연습을 했다. 김홍택은 “지금은 그립을 잡는 게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그때는 그냥 꽉 잡고 휘두르던 때였다”며 이같이 회고했다. 연습에 미친 듯이 몰입한 이유는 또 있다. 프로 골퍼로는 작은 키(173cm) 때문이다. 아버지 김성근 씨는 “제 키(181cm)만큼은 클 줄 알고 거칠게 훈련을 시켰는데 그때 너무 훈련량이 많아서 키가 안 큰 것 같아 지금은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스크린 따로 필드 따로 스윙 요령 생겨”

그는 스크린 대회 우승 상금(1200만원)을 종잣돈 삼아 필드 대회를 준비했다. 물론 필드 골프가 스크린 골프처럼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지난해 2부 투어 1승 등 성적 우수자 자격으로 올해 첫 정규 투어 풀 시드를 거머쥐었지만 9번 출전해 7번이나 커트 탈락했다. 필드 첫승 이전 총상금이 스크린 대회 1승보다 못한 397만원에 불과했다. 바람의 세기나 방향, 남은 거리, 그린 빠르기 등 모든 변수를 수치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스크린과 몸으로 수치를 느껴 계산해야 하는 실전 골프는 한참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드골프는 잔디 종류와 길이, 딛고 선 발 밑 땅의 굴곡까지 생각해야 했다. 변수가 몇 배는 많았다. 하지만 상황별로 스윙 모드를 달리 선택하는 요령이 점차 생겨났다.

“스크린은 띄우는 게 유리하고 필드는 굴리는 게 유리해요. 러프와 벙커는 스크린이 쉽기 때문에 스크린 연습할 때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급적 페어웨이를 지키고 정확한 거리, 방향감을 갖는 데만 집중하는 편입니다.”

스크린에선 드라이버 샷과 우드, 롱아이언 샷을 주로 연습하고, 어프로치와 퍼팅 같은 쇼트게임 연습은 파3나 필드에서 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목표 다 이뤄…남은 건 PGA 입성

그는 골프에 입문할 때부터 목표를 세웠다. 20세 이전에 투어 프로가 되고, 25세 이전에 1부 투어 우승을 하며, 28세 이전에 PGA투어에 진출하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계획대로 이뤄냈다. 남은 건 PGA 입성.

그는 한때 골프를 강권하던 아버지가 미워 반항을 많이 했다. 지금은 말없이 눈빛만 봐도 척척 죽이 잘 통하는 ‘찰떡궁합’ 동업자가 됐다. PGA투어 조기 진출이 같은 목표다. 연습 라운드에선 잘하다가 실전에선 이상하게 샷이 안 되는 ‘분리 증세’를 그는 ‘자신감이 있으면 다 풀린다!’고 힘을 실어준 아버지의 응원으로 넘어섰다.

“멘탈을 좀 더 다듬고 쇼트 게임을 보완하면 충분히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크린, 국내 투어, 해외 투어를 모두 정복하는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포천=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