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내다본 CJ의 '햇반 베팅'…3조 가정간편식 시장 만들었다
첫 번째 도전은 언제나 모험이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패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성공하면 시장을 지배한다. 한국의 가정간편식(HMR) 시장에서는 1996년 이런 일이 일어났다.

CJ제일제당이 햇반을 내놓은 해다. 업계 반응은 두 문장이었다. “미쳤어? 흰 쌀밥을 누가 사 먹어?” 그럴 만도 했다. 햇반 출시 때 가격은 1250원. 당시 식당에서 공깃밥은 공짜거나 500원이었다. 전자레인지 보급률도 65%가 채 안됐다.

20년 만에 이 시장은 40배 성장했다. 1~2인 가구,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일반 가정 수요도 만만치 않다. 여행용 비상식품에서 가정 필수품이 됐다. ‘햇반 때문에 전기밥솥 업체가 어려워졌다’는 말도 나온다. CJ제일제당은 첫 번째 도전자의 권리인 시장지배력을 챙겼다. 즉석밥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한다.

햇반은 HMR 시대를 열었다. 즉석밥 시장은 올해 3000억원대로 커졌다. 즉석밥이 팔리자 업계는 추어탕,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물론 디저트까지 앞다퉈 내놓고 있다.

HMR 시장은 올해 3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 HMR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CJ는 이 산업을 ‘기술력에 기반한 문화산업이자 첨단산업’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시장창출에 나서고 있다.

“10년 전에 누가 된장찌개를 마트에서 사 먹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습니까? CJ제일제당의 햇반, 비비고, 고메가 가정간편식(HMR) 시장에서 독보적인 리더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도록 기술 혁신과 마케팅, 영업력을 모아야 합니다.”

김철하 CJ제일제당 부회장은 이달 초 직원들에게 최고경영자(CEO) 메시지를 보냈다. 급성장하는 HMR시장에서 1등 자리를 더 확고히 하자는 당부였다. 햇반은 물론 비비고, 고메 등 브랜드가 모두 시장 점유율 40%를 웃돌고 있지만 선두의 고민도 있다. 국민의 식생활 습관을 바꿀 ‘제2의 햇반’이 나와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식품은 문화산업이자 첨단산업”

CJ제일제당은 설탕으로 출발했다. 밀가루 다시다 등으로 시장을 넓혀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조업체라 불렀다. 성공 여부는 재료를 가공해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잘하냐 여부에 달렸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초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업(業)을 다시 정의했다. 이 회장은 “식품산업은 문화산업이자 곧 첨단산업”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 “20년만 지나면 가정간편식 시대가 온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햇반이었다. 햇반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또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다.

빛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시 후 10년이 지나도록 즉석밥 시장은 500억원대에 머물렀다. 1000억원을 돌파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이 시장이 3000억원이 되는 데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1년 1000억원 벽을 넘은 즉석밥 시장은 올해 3000억원 시장으로 커졌다. CJ제일제당이 시장을 만들자 2004년 오뚜기(오뚜기밥), 2007년 동원 F&B(센쿡) 등 후발주자가 뛰어들었다.

음식 문화도 바꿔놓았다. 5년 전까지는 여행을 가거나 급할 때만 햇반을 찾았다. 요즘은 박스로 대량 구매하거나 마트 정기 배송으로 햇반을 사는 사람이 많다. 이창용 CJ제일제당 부산공장장은 “우리 목표는 집밥을 햇반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햇반·비비고·고메…3대 브랜드 모두 1등

CJ제일제당은 햇반의 설비 등 인프라에만 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초기에는 반도체 공정과 같은 클린룸에서 ‘무균 포장 방식’으로 제조했다. 상온 보관이 가능해졌다. 2010년에는 자체 도정 설비를 도입했다.

햇반에서 시작된 HMR의 기술 경쟁력은 다른 제품으로 이어졌다. ‘방부제 없이 상온에서 9개월간 보존이 가능한’ 햇반의 무균 기술은 각종 국, 찌개와 양식으로 이어졌다. 2015년 햇반과 국, 소스 등을 결합한 ‘햇반 컵반’은 지난해 매출 500억원을 달성, 6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투자를 통한 시장 장악’이라는 성공방정식을 재현하고자 CJ제일제당은 2020년까지 충북 진천에 5400억원을 투자해 HMR을 중심으로 하는 식품 통합생산기지를 건설한다.

냉동식품 시장에서는 ‘비비고 왕교자’가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재료를 고급화하는 등 냉동만두 시장의 변화를 주도했다. 2013년 12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누적 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미국 만두시장에서도 시장 점유율 11.3%,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