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교과서 낡았다"…불신 커지는 유럽 대학가
경제학만큼 대중의 신뢰와 불신을 동시에 받는 학문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경제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이론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신을 강화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학문에 대한 실망이 확산됐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성장이 둔화하면서 불평등이 도드라졌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14년 가디언지 공동기고문에서 “학위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에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 복잡한 수학 모델을 다룰 줄 아는 경제학 전공자를 채용해도 기업 전략을 짜거나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데 별 쓸모가 없다는 기업·중앙은행·공공기관 등 고용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학 교과서 낡았다"…불신 커지는 유럽 대학가
틀에 박힌 경제학 교재를 바꾸자는 주장이 많아졌다. 그해 영국에서 첫 출간된 《경제》(The Economy, 옥스퍼드대 출판사·사진)는 그 해답 중 하나다. 영국 런던대, 프랑스 시앙스포와 툴루즈경제대, 독일 훔볼트대 등에서 이 책으로 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한 CORE 프로젝트에 참여한 새뮤얼 볼스 산타페연구소 교수와 웬디 칼린 런던대 교수 등이 7일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포털사이트 VoxEU에 기고한 글은 이 책의 강점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주요 대학 학부에서 경제학개론(원론) 교재로 흔히 쓰이는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 책이 지나치게 경직된 완전 경쟁, 완전한 정보 제공 등 여러 가정에 묶여 있음을 지적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관계나 가격 설정 과정도 현실의 복잡함과 달리 매우 도식화돼 있다고 했다.

또 현대 경제학의 기틀을 세운 이론 중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론이나 존 내시의 게임이론 등 핵심적인 부분을 홀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슘페터의 기업가정신과 혁신에 관한 이론, 불완전한 정보와 계약관계, 게임이론을 기반으로 한 동적인 선택의 문제 등을 두루 다룰 필요가 있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나아가 이렇게 함으로써 법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의 인사이트를 경제학 안에 들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 22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런 문제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컨대 경제의 불균형 상태와 실업·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적절한 경제정책의 문제, 이타주의적 선호와 죄수의 딜레마 문제 등이다.

특히 불평등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사실 부유해 보이는 고급 아파트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허름한 판자촌이 형성된 모습을 담은 표지부터 메시지가 또렷하다.

학계에서도 관심이 크다. 지난해 10월 독일 벨트지는 이 교재를 온라인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홈페이지에 학생 2만6000여 명, 교수 2000여 명이 등록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아직은 관심 수준이고 실제 강의 현장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보수적인 주류 경제학계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학문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섣불리 문제 제기만 내세우는 데 대한 우려 등이다. 사실 이 책은 복잡한 문제를 아주 다양하게 나열하고 있다. 생각해 볼 거리들이긴 하지만 답이 없는 미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경제》가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볼스 교수 등은 훔볼트대 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 등을 들어 현재 경제학자들이 반드시 파헤쳐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불평등’이 꼽히고 있음을 역설한다. 불평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존 분위기와는 사뭇 톤이 다르다.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주류 경제학계가 《경제》라는 새로운 시도를 마냥 경계하기보다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