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10월 황금연휴…유럽행 티켓 끊는 '욜로족'
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황금연휴’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4일인 추석을 앞뒤로 개천절과 대체공휴일 주말 한글날까지 이어지는 7일간의 휴일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내달 2일 임시공휴일 지정이 확정되면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최장 열흘간 연휴를 즐길 수 있다. 제주도·하와이 등 인기 여행지 항공권은 이미 거의 동났다. 발빠른 이들이 지난해부터 국내외 여행 교통편을 확보해놔서다. 오랜만의 여유를 자기계발이나 집안일에 쓰겠다는 사람도 많다. 반면 일부 직장인들은 명절 휴일이 길어진 것에 오히려 부담을 느낀다. 긴 연휴를 앞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을 여행 기회”…“그냥 쉬긴 눈치 보여”

[김과장&이대리] 10월 황금연휴…유럽행 티켓 끊는 '욜로족'
여행을 좋아하는 박 대리(32)에게 황금연휴는 국내 방방곡곡을 돌아볼 절호의 기회다. 여름·겨울 정기휴가 땐 해외를 가다 보니 정작 국내 여행지를 찾을 기회가 없었다. 다음달 연휴엔 세 살 위인 형과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했다. ‘남는 게 시간’이니 당일치기로 무리하게 다녀올 생각은 없다. 이틀간 쉬엄쉬엄 걷고, 화엄사 등 인근 절에서도 머물러볼 계획이다.

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 대리(31)는 지난여름 휴가를 집에서 보냈다. 추석 연휴에 유럽 4개국 여행 계획을 잡아놔 예산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달은 날씨가 선선해 여름보다 돌아다니기 더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차를 붙여 쓰면 정기 휴가 때보다 더 오래 여행할 수도 있다. 큰 장점이 또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몰린 휴가철 인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는 “직장 일을 하면서는 가을에 외국 여행을 할 기회가 거의 없어 비싼 비행기 표를 큰맘 먹고 질렀다”며 “유명 미술관이나 성당 등에서도 긴 줄을 서지 않고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긴 연휴를 그대로 쉴 수 있을지 맘 졸이는 이들도 있다. 2년차 직장인 김모씨(29)는 올초부터 추석 해외여행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 표도 미리 사뒀다. 법정 휴무일이니 당연히 쉴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부서장과 식사하던 중 듣게 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찝찝해졌다. 김씨와 다른 부서원들이 여행 계획에 대해 신나게 떠들자 부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후배들은 참 편하게 회사 생활하는 것 같아. 우리 때는 5년차 밑으로는 휴일에도 당연히 나와서 일했는데… 이젠 다들 열의가 없나 보다.” 순간 식사 자리에 정적이 흘렀다. 김씨는 “부서장이 농담으로 한 말이겠거니 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영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하지만 ‘솔직히 걱정된다’는 부서원도 많습니다. 연휴 내내 놀겠다고 했다가 자칫 ‘일 안 하는 놈’으로 찍힐까 봐서요.”

“평소 미룬 일 끝낼 것”

황금연휴를 ‘숙원 사업’ 처리 기간으로 정한 이들도 많다. 까다롭거나 시간이 많이 들어 평소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일들을 큰맘 먹고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엔지니어링 기업에 다니는 오 대리(33)는 집안 리모델링 계획을 짤 예정이다. 아내와 함께 1년 가까이 별러온 일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안은 손도 대지 못했다. 리모델링 디자인이나 비용이 천차만별이라서다.

오 대리는 “연휴 동안 책이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리모델링 자료를 모을 것”이라며 “시간 여유가 있으니만큼 가족과 의논을 거쳐 꼼꼼히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시중은행에 다니는 정 대리(29)는 이번 연휴를 활용해 얼굴에 있는 점을 모두 뺄 계획이다. 3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점들이 늘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마침 여러 피부과도 연휴 특수를 노리고 시술 비용 50% 할인 행사를 열고 있었다. 정 대리는 “시술 후 회복 기간도 충분해 이번 연휴가 기회라고 판단했다”며 “여행을 못 가는 건 아쉽지만 외모 콤플렉스를 해결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홍 과장(38)은 연휴 동안 공부에 ‘올인’하기로 맘먹었다. 직장 내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영어 공인인증시험 점수가 필요해서다. 연휴 동안 바짝 공부해 놓고, 바로 그 다음주에 치르는 영어 시험에 응시해 높은 점수를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는 “평소엔 일과 후 녹초가 돼 공부할 맘이 통 안 났다”며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벼락치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어진 명절에 부담도 두 배”

평소보다 긴 연휴가 달갑잖은 이들도 있다. 한 유통회사에 다니는 배모씨(34)는 요즘 다음달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석 달 전 배씨의 남편은 시부모와 함께 가족 여행을 가자고 불쑥 말을 꺼냈다. 제안을 들은 배씨의 시아버지는 “아무리 그래도 추석인데 차례는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매년 해온 대로 차례를 지내고, 이튿날 배씨 부부가 시부모와 함께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배씨는 “이번 명절엔 차례를 마친 뒤 쉬지도 못하게 됐다”며 한탄했다. “차례 일은 일대로 하고, 여행 중에도 시부모님을 모시게 됐어요. 황금연휴 때문에 명절 며느리 노릇을 두 배로 하겠네요.”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김 차장(41)도 오는 연휴가 두렵긴 마찬가지다. 나이가 불혹을 넘긴 그는 아직 미혼이다. 최근 몇 년간 “장가는 언제 가냐”는 친척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 매번 짧은 연휴와 과중한 업무를 이유로 댔다.

하지만 올해는 얘기가 다르다. 쉬는 날이 길어지면서 업무 핑계를 대기가 궁색해졌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이번 추석엔 어쩔 수 없이 고향에 내려가야 할 것 같다”며 “어르신들의 잔소리를 어떻게 견딜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