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Watch] '분유 혁명' 뒤엔 삼양패키징의 한뼘기술 있었네
요즘 갓난아기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이 있다. 페트병에 들어 있는 액상분유다. 가루 형태로 판매되는 분유와 달리 페트병에 원유를 액상 형식으로 보존한 제품으로, 따로 조제할 필요가 없다. 완전 멸균 상태라 뚜껑을 따지 않으면 상할 위험도 없다. 페트병 입구에 유아용 젖꼭지를 끼우면 바로 젖병으로 변해 아이들에게 수유할 수 있다.

◆무엇이 다른가

엄마들 사이에선 ‘분유의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외출할 때마다 젖병과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며 분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012년 LG생활건강이 국내 최초로 제품을 출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남양유업, 매일유업, 일동후디스, 롯데푸드 등도 액상 분유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페트병 제조업의 첨단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간 21억3000만 병의 페트병을 생산하는 국내 1위 제조업체 삼양패키징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무균 충전 방식이 없었다면 분유업계도 신시장을 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충전(充塡)은 빈 공간을 채운다는 뜻의 단어로 업계에선 음료를 병에 넣는 것을 의미한다.

무균 충전 방식은 일반 회사가 사용하는 고온 충전 방식과 다르다. 음료를 초고온으로 순간 살균한 뒤 ‘무균화-즉시 냉각’을 거쳐 무균화된 용기에서 충전한다. 음료를 충전할 때 장시간 고온에 노출해야 하는 고온 충전 방식에 비해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 멸균 상태로 패키징이 이뤄지기 때문에 미생물 번식 위험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79년 국내 최초로 페트병 사업을 시작해 샘표 간장병, 코카콜라 음료병, 하이트 맥주병을 주로 생산해온 삼양패키징은 2007년 국내 최초로 무균 페트 충전 설비를 도입했다. 맛과 향이 떨어지고 음료가 변질될 위험이 있는 기존 고온 충전 방식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그 덕분에 한국의 곡물음료 시장도 급성장했다. 광동제약 ‘옥수수수염차’, 웅진식품 ‘하늘보리’ 등이 삼양패키징 광혜원공장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이다. ‘보리차는 금방 상한다’는 편견도 깼다. 주병권 삼양패키징 광혜원공장 공장장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음료 변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무균 충전 방식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삼양패키징 광혜원공장의 가장 큰 장점은 음료 생산부터 패키징까지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곡물음료와 빙그레 아카펠라 커피 등 커피류, LG생활건강 남양유업 일동후디스의 액상분유도 삼양패키징에서 OEM 방식으로 제조한 제품이다.

◆연말 상장에 박차

음료 개발 전문인력과 파일럿 연구실이 있어 먼저 제품을 개발한 뒤 고객사에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음료인 ‘캐리 상큼포도’ 등도 이렇게 탄생했다. 25개 고객사에 음료 200여 종을 납품하고 있다.

한동안 무더위가 지속된 올여름 실적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진명 삼양패키징 품질보증파트장은 “고객사가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해도 공장이 완전가동 중이라 도저히 물량을 맞춰줄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모회사인 삼양사 실적 개선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101억원, 영업이익은 410억원이었다. 아셉시스글로벌(옛 효성 패키징PU)과의 합병 효과로 전년 대비 매출은 67.7%, 영업이익은 162.3% 증가했다. 올 상반기 매출은 1694억원, 영업이익은 233억원으로 지난해 실적을 가볍게 뛰어넘을 전망이다. 지난 10일 유가증권시장본부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연말 코스피 상장 절차를 밟고 있어 시장의 관심도 크다.

최근에는 품목 다변화를 위해 800억원을 투자해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생수, 차 음료, 탄산수 시장이 급격하게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새로 증설되는 생산 라인에서는 탄산수 제조 및 패키징이 가능하다. 주 공장장은 “삼양패키징은 환경 문제도 생각하는 토털 솔루션 업체”라며 “꾸준한 연구개발(R&D)과 품질 관리로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천=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