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내벤처 ‘C랩(Creative Lab)’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선사했다. 18일 태평로빌딩에서 공개한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Relúmĭno)’를 통해서다.

릴루미노는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직원 3명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다.
 '릴루미노' 시연 모습.
'릴루미노' 시연 모습.
◆ ‘고가’ 시각보조기기 대비 성능 비슷·휴대성 ↑

릴루미노는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 TV 시청과 독서를 할 때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2016년 5월 C랩 과제로 선정됐다.

라틴어인 릴루미노는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삶의 즐거움을 돌려준다는 의미로 과제 명칭을 정했다.

릴루미노는 20일부터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기어 VR과 호환되는 갤럭시 S7 이후 스마트폰에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기어 VR에서 작동시킬 수 있다.

전맹을 제외한 1급에서 6급의 시각장애인들이 기어 VR을 착용하고 ‘릴루미노’를 실행하면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전맹이란 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를 말한다.
릴루미노 독서모드 적용시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
릴루미노 독서모드 적용시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
릴루미노는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백내장, 각막혼탁 등 질환으로 시야가 뿌옇고 빛 번짐이 있거나 굴절장애와 고도근시를 겪는 시각장애인이 글자나 사물을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더불어 섬 모양으로 일부 시야가 결손된 ‘암점’과 시야가 줄어든 ‘터널시야’를 가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 재배치 기능도 제공한다.

암점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주변 시야에 배치하고, 중심부만 보이는 터널시야는 보이지 않는 주변 시야를 중심부에 축소 배치해 비교적 정상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릴루미노는 1000만원이 넘는 기존의 시각보조기기 대비 성능은 유사하나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휴대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릴루미노팀은 2017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에 참가했다. 기어 VR로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과 다른 시각보조기기에 대비 높은 접근성에서 호평을 받았다.
'릴루미노' 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
'릴루미노' 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
C랩 과제는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는데 비해 릴루미노는 이례적으로 1년 더 후속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릴루미노팀은 VR에서 더 발전된 안경형태의 제품을 개발하여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어 VR용 릴루미노도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불편사항을 지속 개선할 방침이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는 전세계 2억4000만명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바꿔줄 ‘착한 기술’이다”며 “후속 과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 라고 말했다.

◆ 삼성전자 C랩, 총 180개 과제 수행…25개 스타트업 창업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IoT, 웨어러블, VR과 같은 IT 분야뿐 아니라 ‘릴루미노’와 같은 사회공헌 과제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제까지 총 180개 과제를 수행했고, 7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또 2015년부터는 C랩 과제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정해 임직원들이 독립해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 후속과제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 후속과제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25개 C랩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이 중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설계·생산하는 ‘에임트(AIMT)’는 4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하는 ‘쿨잼컴퍼니(COOLJAMM company)’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MIDEMLAB) 2017’에서 우승하는 등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점착식 소형 메모 프린터를 개발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던 ‘망고슬래브(MANGOSLAB)’는 스타트업으로 독립한지 1년 만에 양산 제품을 생산해 9월 본격적인 판매를 앞뒀다.

‘망고슬래브’는 2016년 6월 창업해 현재 14명으로 인력이 3.5배 증가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근무하고 있다.

C랩은 앞으로 실패율 90%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다. ‘릴루미노’처럼 어렵지만 성취 불가능할 것 같은 과제에 도전해 꼭 성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재일 상무는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안이한 목표 보다는 도전해도 10명중 1명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불가능에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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