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이 원하는 '능력자'는 누구인가
필자가 오랜 기간 근무하던 기업에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본의 어떤 회사에 초기 제품을 납품했는데 그중에서 불량이 발생했다. 그 고객사의 품질담당 부장이 말했다. “당신들은 처음에 불량이 생겼을 때 원인을 찾기 위해 한두 단계밖에 내려가지 않더라. 그래서 회의를 통해 더욱 심층적인 분석을 하도록 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 적어도 여섯 단계는 파고들어야 한다.” 문제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복잡한 성격의 문제상황은 기업에 큰 사건이 될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기는커녕 발생 원인을 알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업에서 근무를 하며 다양한 유형의 ‘일 잘하는 사람’을 봤다. 하지만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 상황에서는 단지 일 잘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나 열의를 갖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고객의 불만이 쌓인 경우는 의욕만 앞서서 근본적인 원인 파악을 잘 하지 못하고, 해결 방법을 찾을 때 이것 해보다가 저것 해보고 하는 식일 때였다. 설령 해결을 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 해결이 됐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같은 종류의 문제가 재발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고객의 신뢰도가 오히려 올라간 때는 방법론을 통해 정확히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해결 방법을 모색한 경우다. 필자가 경험한 후자의 경우엔 문제해결에 능한 ‘능력자’가 투입돼 해결의 선봉에 선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토록 필요한 능력자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까.

첫째, 능력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끝까지 파고든다. 무턱대고 문제에 덤벼들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질문을 던져 원인을 밝힌다. 이후에야 문제 해결 단계에 들어간다. 둘째, 능력자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파악한 지식을 데이터베이스화한다. 문제 유형별로 분류한 해결 방법들, 기술 정보, 실패 사례 등을 정리한 두꺼운 수첩은 능력자들에게 보물이다. 셋째, 처음 접하는 새로운 종류의 문제인 경우에는 공학적 원리나 이론을 적용해야 한다. 이때 변수를 줄이고 실험계획법을 통해 몇 차례 실험을 함으로써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융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것처럼 이를 해결하는 능력자 또한 영역을 넘나드는 인재여야 한다. 학교에서 학문에 정진하거나, 기업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영역을 넘나드는 통찰력을 기르기 쉽지 않다. 즉, 능력자는 학문적 지식과 산업 분야의 경험을 균형 있게 갖춰야 한다. 또 많은 문제해결 실전을 통해 융복합적인 지식과 방법론을 체득해야 한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현장의 문제들은 더욱 다(多)학제화되고 융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게 됐다. 우리나라의 공학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일 잘하는 사람을 넘어 문제해결 능력이 출중한 능력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준수 < 전 SK이노베이션 전무·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