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해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간 30조6000억원을 들여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초음파 등 건강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非)급여 진료항목 3800여 개를 전면 급여화해 치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은 건보 혜택을 적용받지 못하는 비(非)급여 항목이 너무 많아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의료비 중 가계직접부담 비율은 2014년 기준 한국이 36.8%(건보 보장률 6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6%)의 1.9배다. 정부는 정책이 시행되면 건보 보장률이 2014년 63.2%에서 2022년 70%로 올라가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1인당 평균 50만4000원에서 41만6000원으로 1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30조6000억원 조달 방안으로 건보 누적흑자 20조원 중 10조원을 쓰고, 국고 지원 및 보험료 부과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제시했다. 향후 보험료 인상률은 과거 10년간 평균 인상률(3.2%)을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찬반 의견은 갈린다. 찬성 측은 지금처럼 병원이 비급여 수입에 매진하게 하는 것은 의료 공급에 왜곡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급여의 남용을 줄이면 전체 의료비 부담도 감소한다”며 “추가 투입하는 30조6000억원은 건강보험 몸집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반대 측은 건강보험 누적흑자가 소진되면 급격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찬성

추가 투입 31조 건보재정 부담 안돼
비급여 남용 줄면 전체 의료비 감소

급여 수입만으로 병원 정상경영 가능토록 조정을


[맞짱 토론]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해야 하나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환자 부담을 줄이는 획기적 방안을 많이 포함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필수의료를 건강보험 대상으로 하는 원칙’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 원칙이 적용되면 한국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건강보험 제도를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임기 내 실현하겠다고 했다. 현장에서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해내야 한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첫째, 정부가 그 돈을 다 어디에서 조달할 수 있느냐는 우려다. 하지만 5년간 31조원은 건강보험 전체로 볼 때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니다. 건강보험 적용 환자 치료비로 2015년 한 해에 의료기관에 지급된 돈은 환자 부담을 포함해 모두 70조원이 넘는다. 5년이면 350조원 이상이다. 추가 투입 금액인 31조원은 건강보험 몸집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오히려 그 정도 금액으로 건강보험 보장률 70%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강보험 누적흑자액은 21조원이다. 그리고 흑자 기조에 있다. 21조원도 지난 5년 새 쌓인 것이다. 건강보험료는 6.12%로 일본 10%, 프랑스·독일 15%보다 낮다. 1%포인트만 올려도 약 5조원이다. 5년이면 25조원이다. 충분하다. 여력이 있으면 더 투입했으면 한다. 31조원으로는 보장률 70% 달성이 힘겨울지 모른다.

환자 부담을 줄이면 ‘의료쇼핑’이 만연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예비급여’라는 제도가 강구됐다. 본인 부담을 50%, 70%, 90%를 해서라도 급여권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높은 본인 부담료를 내면서 의료 남용을 하기는 어려울 테고, 의사들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권하기 힘들 것이다.

전체 의료비 규모가 폭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실 이번 개혁안이 제대로 이행되면 전체 의료비 증가 속도는 지금보다 둔화된다. 적어도 길게 보면 그렇다. 모든 필수의료를 급여화하면 다음 단계로 ‘혼합진료 불인정’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원칙은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포기할 때만 비급여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건강보험에서 필수의료를 다 보장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맞짱 토론]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해야 하나
비급여 남용을 줄이면 전체 의료비 부담은 줄어든다.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돈은 건강보험만이 아니다. 의료급여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민영보험이 지급하는 돈을 포함하면 모두 107조원이다. 여기에 예방과 건강 증진 등이 포함되면 116조원이 된다. 크게 보면 모두 국민 부담이다.

이번 개혁안은 전체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환자 부담은 더욱 줄이는 방안이다. 단순한 ‘복지 확대’만이 아닌 그 이상의 효과를 갖고 있다.

의료기관들의 비급여 수입이 줄고, 신기술 개발 의욕이 꺾이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서비스당 단가는 외국보다 낮을 수 있지만 의료인당 지급 수준은 외국과 단순 비교가 어렵다. 의료기관이 비급여 수입에 매진하는 것은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의 왜곡을 가져온다.

따라서 향후 급여 수입만으로 의료기관의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해지도록 의료행위 간 상대 가치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 신의료기술 발달을 저해하지 않고 스마트 헬스케어가 의료 제공체계에 수용되게 하는 것은 큰 과제다.

반대

건보 흑자 소진…보험료 인상 불가피
재정 절감만을 위한 축소 진료 우려


건강보험제도 지속 가능하게 할 장기 정책 필요

[맞짱 토론]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해야 하나
정부는 사회보험의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병원비 부담이 줄어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냐는 것이다.

5년간 30조6000억원이 드는 이번 정책을 수행하려면 기존 건강보험 누적흑자의 소진과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급격한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40년 역사의 건강보험이 재정 악화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정부는 재정 절감 대책으로 더 이상의 비급여를 막기 위해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신포괄수가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 진료비 심사 강화, 환자 부담을 차등화하는 예비급여 도입 방안을 내놨다.

이는 관행 수가 인하가 목적이다. 환자 부담이 90%인 예비급여는 급여화가 됐다고 볼 수도 없다. 환자들은 의사의 판단과 본인의 선택에 의한 적절한 진료를 받기보다 재정 절감을 위한 축소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의료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 수준이며 원가 보전도 안 된다. 선진국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위해서는 보험료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의료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

환자의 도덕적 해이에 따라 의료자원의 적정한 분배도 어려워진다. 환자는 경증 질환이어도 특수 고가의 검사를 요구할 수 있다. 입원 진료비가 무상이라면 입원을 요구할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재정 절감과 진료 적정성 평가를 내세워 청구 의료비를 과잉 삭감하고 결과적으로 의사와 환자 간 불신이 증폭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소극적 진료를 하면 민원과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필수 의료와 중증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오히려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비급여의 완전 급여화에 따라 상급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이 그동안 낮은 수가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의학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비급여 진료가 일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맞짱 토론]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해야 하나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감염과 업무 중압감이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돼 있다. 그나마 전공의특별법 시행으로 주 200시간 이상이던 근로시간이 80시간까지 줄었지만 전공의 교육에 필요한 정부 지원과 대책은 전혀 없다. ‘인구절벽’은 어떤가. 건강보험료를 낼 인구는 줄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의료비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당면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 상황인데 복지 강화를 위한 비급여의 급여화가 우선 순위 정책인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건강보험 보장의 취약성을 실손보험에서 담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300만여 명이 더 좋은 의료를 받기 위해 민간 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는 의료의 하향 평준화를 일부 저지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따른 실손보험사의 반사이익을 공·사보험 연계법으로 해결한다는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가능한 일인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무상의료를 내세웠던 공산주의 국가들에선 경제가 무너지기 전에 국민 건강이 먼저 망가졌다. 누구도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명목상 무상의료였기 때문이다. 당장 병원비가 줄어든다는 달콤함보다는 건강보험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김일규/이지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