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요금?… 한·중 컨테이너선 운임 1만원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노선을 운항하는 근해 컨테이너선사들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운임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선박 공급 과잉에 따른 출혈경쟁이 심해지는 데다 막대한 물동량을 쥐고 있는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운임 인하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근해선사인 흥아해운은 올 상반기 영업손실 31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국내 12개 근해선사의 영업이익도 2015년 3818억원에서 작년 2468억원으로 35% 급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항할수록 손해가 나는 ‘적자노선’이 늘고 있다”며 “올해는 영업수지가 더욱 나빠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물동량은 줄고 선박은 넘쳐나면서 선사들의 ‘제살깎기’식 경쟁이 치열해지자 운임은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컨테이너선으로 한국(부산)에서 중국(상하이)까지 화물 1TEU(6m짜리 컨테이너 1개)를 운송하는 데 드는 운임은 10달러 수준이다. 이는 트럭으로 서울과 부산 간 컨테이너 1개를 운송하는 비용(68만원)의 약 2%에 불과하다.

한·중 노선 운임은 2000년 250달러에서 2010년 50달러로 급감한 데 이어 작년 1달러까지 떨어졌다. 한국과 일본 간 노선 운임도 현재 160달러로 2000년(500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싱가포르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근해선사들이 가장 많이 운항하는 한국~동남아 노선 운임은 70달러로 2000년(700달러)의 10분의 1로 떨어졌다. 이들 노선이 주요 수입원인 근해 선사들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임으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빈 배로 보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짐을 실어 보내는 게 그나마 손실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중국·한국~일본 노선의 인건비, 유류비 등 원가는 200달러, 한국~동남아 노선의 원가는 500달러 수준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낮은 운임이 책정되는 데는 근해 선사 일감의 대부분을 주선하는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압박’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들 회사가 화주의 물류비 부담을 덜어주려고 선사에 기존 운임의 절반 수준을 요구하거나 거부 시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판토스(LG), 롯데로지스틱스(롯데), 한익스프레스(한화), 효성트랜스월드(효성) 등은 당초 계열사 물량만 주선해오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제3자 물량’까지 대거 흡수하며 해운업계의 ‘큰손’이 됐다. 선사들은 국내 수출 물동량의 80%(640만TEU)가량을 이들로부터 입찰을 통해 주선받고 있다. 최근 A선사는 200달러인 운임을 50달러로 낮춰달라는 한 대기업의 요구를 거절하자 향후 2년간 입찰 참여를 배제당했다.

물류자회사인 B사는 선사 입찰 때 운임만 명시하고 물량이나 운송기간을 수시로 변경해 상당한 ‘운임 인하 효과’를 보고 있다. 모 해운사 사장은 “가장 큰 고객이라 어떤 선사도 불평하지 못하고 운임을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7개 대기업 물류자회사 매출이 2000년 대비 2015년 24배 늘었지만 167개 해운사 매출은 1.7배 늘어나는 데 그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피해가 커지자 지난 6월 국회에선 대기업 계열사를 통한 제3자 해운 물류 주선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물류 자회사 관계자는 “공급이 많아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최근 입찰 시스템 개선을 통해 선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