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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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도로 사이클 대회로 불리는 ‘2017 투르 드 프랑스’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투르 드 프랑스는 정상급 프로 사이클 선수 198명이 3주간 프랑스와 인접 국가를 포함한 총 거리 3500여㎞를 21개 구간으로 나눠 달리는 경기다. 이번 대회에선 영국 ‘팀 스카이’의 리더 크리스 프룸(영국)이 86시간 20분 55초의 성적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2013, 2015, 2016년에 이은 네 번째 우승이다.

프룸의 우승과 더불어 팬들의 주목을 받은 팀이 있다. 네덜란드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팀 선웹이다. 이번 투르 드 프랑스에서 소속 선수인 와헨 바길(프랑스)과 마이클 매튜스(호주)가 구간 우승 4개를 합작했다. 프로 사이클 세계에선 단 한 번이라도 투르 드 프랑스 구간 우승을 해낸다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매튜스와 바길은 종합 1위가 입는 ‘옐로 저지’ 다음으로 중요한 그린 저지(평지 스프린트 포인트 최다득점), 폴카닷 저지(산악포인트 최다득점)를 각각 획득했다.

3주간의 대장정을 지켜본 사이클링 팬들은 선웹 선수들이 타는 대만제 자전거 자이언트에 주목했다. 1972년 대만 타이중에서 작은 자전거 공장으로 시작한 자이언트는 이제 프로 선수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자전거 동호인들이 찾는 ‘거대’ 브랜드가 됐다.

미국 자전거 OEM으로 출발

자이언트TCR 어드밴스 SL
자이언트TCR 어드밴스 SL
자이언트 자전거는 창업자인 킹 리우 회장과 토니 로 최고경영자(CEO) 두 사람이 일궈냈다. 엔지니어였던 리우는 1934년 대만 중부 타이중에서 태어났다. 그는 35세 때까지 자전거와 관련 없는 장어 양식업을 했다. 1969년 태풍 엘사가 대만을 덮치는 바람에 리우의 장어 양식장도 큰 피해를 입었다.

양식장을 포기해야 했던 리우는 미국에서 자전거 붐이 일면서 자전거 회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만에 자전거 공장을 세우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972년 10월 10만달러 자금을 모아 자이언트 자전거를 창업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토니 로는 이듬해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고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기술 개발은 리우 회장이 맡고 영업은 로 CEO가 맡는 쌍두마차 체제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초창기 자이언트는 외국 유명 브랜드의 자전거를 대신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였다. 미국 슈윈사(社)의 주문을 받아 자전거를 만들었다. 기존의 관성적인 제작 방식을 혁신해 1979년에는 연간 35만 대를 생산했다. 1981년에 들어서 자이언트는 자사 브랜드를 부착한 자전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슈윈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가는 등의 위기를 넘기며 자체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1986년 네덜란드, 1987년 미국, 1988년 일본에 지사를 세우며 점차 영역을 넓혔다.

양산형 탄소섬유 프레임 만들며 성장

자이언트가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이 있다. 자이언트는 1987년 세계 최초로 대량 양산형 탄소(카본) 섬유 자전거 프레임을 만든 회사다. 자전거의 몸체인 프레임은 철, 알루미늄, 크로몰리 등으로 만들 수 있다. 카본 프레임은 가벼운 무게와 높은 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고급 자전거에 두루 쓰이고 있다. 프로 선수들도 대회 때 대부분 카본 프레임을 사용한다. 세계자전거연맹의 무게 제한인 6.8㎏은 물론 그보다 더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리우 회장과 로 CEO는 탄소섬유 자전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료와 장비를 모았다. 자이언트가 카본 프레임을 만들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브랜드 명성이 높아졌고 1997년 사이클 강팀인 스페인의 온세(ONCE)가 자이언트에 카본 프레임 자전거를 주문했다. 현재는 카본섬유도 직접 생산해 제작 단가를 낮췄다.

독보적 기술력으로 ‘가성비’ 잡아

1990년대 들어 자이언트는 당대 최고의 자전거 디자이너로 손꼽히던 마크 버로를 영입했다. 강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한 디자인 연구에 매진한 자이언트는 1998년 종합 콤팩트 로드 사이클이란 뜻의 TCR 프레임을 개발했다. 이 자전거는 1999년 프랑스 선수 로랑 잘자베르, 스페인의 데이비드 에체바리아 등이 애용하며 투르 드 프랑스, 이탈리아 도로 사이클 대회인 지로 디탈리아에서 우수한 능력을 선보였다. 이번 투르 드 프랑스에서 활약한 바길과 매튜스도 사용한 TCR은 공기역학 디자인으로 제작된 프로펠과 함께 자이언트 로드사이클의 ‘투톱’으로 불린다.

자이언트의 글로벌 매출은 2조원을 넘겨 세계 1위를 차지한 지 오래다. 뛰어난 기술력,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서 “가격 대비 성능만 놓고 보면 자이언트를 능가할 브랜드가 없다”는 말은 일종의 상식이 됐다. ‘자전거계의 도요타’로 불리는 자이언트는 카본 프레임 제작 기술을 보유한 덕에 고가로 인식되던 로드사이클 시장에 가격 인하 전쟁을 일으켰다.

40년간 자전거 제국 이끌고 2016년 은퇴

세계적인 자전거 제조사로 만들기까지 40년 넘는 우정을 지속한 리우 회장과 로 CEO는 지난해 나란히 은퇴했다. 자전거 업계가 변화하는 만큼 새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리우 회장의 조카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보니 투가 신임 회장,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영 리우가 CEO직을 맡았다. 리우 회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자전거를 많이 파는 것보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전거를 계속 탈 수 있게 하는 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 로 CEO도 한국을 방문해 자전거길 국토 종주를 하는 등 자전거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