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세 마리의 '회색 코뿔소' 앞에 서다
“세 마리의 ‘회색 코뿔소’가 중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올해 상반기 예상을 웃도는 성장을 기록했음에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 이어 중국 언론까지 회색 코뿔소 경계론을 들고 나왔다.

◆심각한 국가 부채 규모

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과 달리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말한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중국 경제에 세 마리의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첫 번째는 막대한 부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에 낮은 이자의 자금을 대폭 지원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총부채비율이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에서 지난해 268%로 뛰었다. 신흥국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5월 기준으론 304%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비금융회사 부채는 약 19조달러(2경1228조원)로 중국 GDP의 170%에 달했다. 투자은행 JP모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이뤄진 신규 대출 중 60%는 오래된 채무를 상환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조사됐다.

크리스토퍼 볼딩 베이징대 HSBC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만성적인 부채가 당장 위협 요인은 아니지만 조만간 경제 성장을 갉아먹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부채를 줄이면 심각한 경제적·재정적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경제, 세 마리의 '회색 코뿔소' 앞에 서다
◆자금 공급 말라버릴 수도

SCMP는 중국 경제의 두 번째 회색 코뿔소로 자금 공급이 말라버릴 가능성을 꼽았다. 최근 중국에선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더 많다. 2014년 6월 4조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3조568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3년 새 1조달러 가까이 증발한 것이다. 외환보유액은 중국 내 가장 중요한 자금 공급원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자본 유출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눈에 띄게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했다. 금융당국이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소규모 은행은 신규 대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컨설팅 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에번스 프리차드 중국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소형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와 비슷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규제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가지 회색 코뿔소보다 더 위험한 요인은 금융 거래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법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쉬청강 청쿵경영대학원 교수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규제의 일관성과 법원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러나 중국에선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규제라는 이름으로 남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민일보가 먼저 제기해

회색 코뿔소 경계론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제기했다. 지난 14~15일 전국금융공작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국가 부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자 인민일보는 17일자 1면 칼럼에서 “경제에서 블랙 스완도 조심해야 하지만 회색 코뿔소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회색 코뿔소가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NYT는 국유은행이 제공한 저리 대출을 이용해 해외 기업과 부동산을 대거 사들인 안방보험그룹, 하이난항공(HNA)그룹, 다롄완다그룹, 푸싱그룹이 바로 회색 코뿔소라고 지목했다. 지난 5년간 4개 기업이 인수합병(M&A)에 쏟아부은 자금은 410억달러(약 46조원)를 넘는다.

WSJ는 26일자 사설을 통해 “중국 경제는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1980년대 일본을 연상시킨다”며 “중국 기업들이 겉으로만 그럴듯한 ‘트로피 자산’을 앞다퉈 사들이는 게 30년 전 일본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완다그룹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와 영화관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것을 거론하면서 “1989년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했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인수 비용을 겨우 상환한 소니를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