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한국적인 폴리타'는 어떨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이 지난 10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 11회째로 뮤지컬만을 소재로 하는 아시아 유일의 축제다. 러시아 중국 대만 영국 인도 등 총 8개국에서 참가한 26개 작품이 한여름 달구벌을 뜨겁게 달궜다.

올해 대상을 받은 작품은 뮤지컬 ‘폴리타’다. 무성영화시대에 인기를 누린 전설의 여배우 폴라 네그리의 일대기를 다뤘다. 살아생전 그는 미국과 유럽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타였지만, 태생이 폴란드다 보니 뮤지컬은 폴란드 예술가들에 의해 구현됐다. 실존 인물이 소재여서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와 소품들이 복고와 향수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찰리 채플린, 루돌프 발렌티노, 영화감독 에른스트 루비치와의 가십과 염문들, 글로리아 스완슨과의 경쟁, 히틀러와 괴벨스로 대변되는 독일 나치 제3제국의 예술 탄압 같은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대 위 스토리 자체뿐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메우는 대중적 호기심이 다양한 상상을 가능케 한다.

특히 폴리타가 흥미를 자아낸 것은 뮤지컬로서는 드물게 시도한 입체(3D) 영상의 접목 때문이다. 입체영화관을 찾으면 경험할 수 있듯이, 뮤지컬 폴리타 공연장에선 폴란드에서 직접 공수했다는 제작사의 3D 안경을 나눠준다. 이 덕분에 뮤지컬의 미술적인 감상은 세트나 소품에서뿐 아니라 바로 앞자리로 떨어지는 듯한 낙엽이나 돌출돼 보이는 건물 이미지 등 이색적인 이미지로 완성된다. 압권은 하늘을 나는 비행 장면이다. 와이어에 연결돼 무대 위로 솟아오른 비행기가 좌우로 방향을 틀면 이에 맞춰 입체적 이미지와 영상이 무대 위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이 뮤지컬 최고의 장면이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3D 영상의 남용이 과유불급의 아쉬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배우들의 열정과 역동성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나타샤 우르바니스카의 움직임과 춤사위는 시종일관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무대를 선사해 딤프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했다. 전체 컴퍼니가 함께 안무를 꾸미는 ‘찰스턴 바빌론’ 장면도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재미를 유감없이 선사했다.

이색적인 소재나 형식의 창작 뮤지컬도 흥미로웠지만 올해 딤프에서는 인도에서 참가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중국 예술인들이 재현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어우동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프랑스 뮤지컬 ‘마담 루시올’, 아서왕의 전설을 희화화한 코미디 영화를 다시 뮤지컬로 환생시킨 영국 뮤지컬 ‘스팸어랏’ 등이 큰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 한결같이 원작을 가져와 무대적으로 재활용한 문화산업의 원소스 멀티유스(OSMU) 공식을 적용한 작품들이다. 해가 갈수록 다양하고 이색적인 경험의 성과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무척이나 반갑고 흥미롭다.

한국적인 폴리타는 어떨까. 너도나도 한류의 위기를 말하지만, 한류의 확대 재생산에는 제대로 된 관심도 없고 효율적인 예산 편성도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하거나 색 바랜 것에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포함된다는 문화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공식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미 대중성과 흥행성이 검증된 콘텐츠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생산물들이다. 딤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글로벌 뮤지컬 크리에이터들의 흥미로운 지혜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