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증세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여야 대치 전선이 세법 개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4일 당정 협의를 열고 다음달 2일엔 정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속도전을 벌일 태세다.

오는 9월 시작하는 정기국회에서 초고소득층(과표 5억원 초과)과 초대기업(과표 2000억원 초과)에 대한 세율 인상을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증세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찬반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자증세', 정기국회 문턱 넘을까
◆민주당, 한국당 포위 나설 듯

민주당은 정부 세법 개정안이 확정되는 대로 야당을 상대로 한 설득에 나설 전망이다. 민주당 단독으로는 국회 의석 과반(150명)에 미달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120명)과 증세에 찬성하는 정의당(6명), 무소속 중 진보 성향 의원(4명)을 합쳐도 130명에 그친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국민의당(40명)과 바른정당(20명)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한국당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22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이런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야 3당이 증세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 ‘약한 고리’다. 한국당은 증세에 반대하고 있지만 국민의당은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린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증세는 최후 수단이 돼야 하는데 지금 증세안은 너무 성급하다”고 했지만 박지원 전 대표는 “부자 증세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주당 시절 소득세·법인세율 인상 법안을 발의하는 등 증세 자체엔 반대하지 않는다.

바른정당은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하며 증세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다만 일부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한정된 증세로는 복지정책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증세에 앞서 국민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국민의당과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면 바른정당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기재위에서 총력 수비

한국당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세법 개정안 처리를 막는 방식으로 증세 저지에 나설 전망이다.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심사·의결한 뒤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세소위는 민주당 3명, 한국당 3명, 국민의당 2명, 바른정당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소위원회에선 여야가 합의한 법안만 통과시키는 관행이 있어 한국당 의원들이 끝까지 증세에 반대하면 세법 개정안이 조세소위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조세소위 위원인 김광림 한국당 의원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증세는 적절치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더구나 한국당 소속인 추경호 의원이 조세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어 법안을 상정하지 않거나 회의를 열지 않는 식으로 처리를 지연시킬 수도 있다. 기획재정위원장인 조경태 의원도 한국당 소속이다.

세법 개정안이 기재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민주당은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합의 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선 소득세·법인세율 인상을 추진하는 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맞서다 소득세율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38%에서 40%로 높이고 법인세율은 올리지 않는 선에서 타협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