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관계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학술단체조직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과총 회원 학회 및 단체 609개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기업, 시민단체 소속 37만9081명에게 이메일 설문을 돌려 이 중 2029명에게서 답변을 받은 결과다.

응답자의 65%는 정부의 탈원전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현 가능하다고 답한 의견은 29%에 불과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에서 탈원전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8%, 의지 표명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34%에 이르는 등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반응이 70%를 넘었다.

과총은 지난달 12~15일 이 설문조사를 했지만 한 달 넘게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과총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매년 130억원대 국고보조금을 과총에 지원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지난 5월9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번을 포함해 세 차례 전체 설문조사를 했다. 지난 5월10~14일 한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에 관한 설문조사와 5월13~18일 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설문조사는 같은 달 23일 발표했다. 유독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한 달이 넘은 시점에 발표된 것과 비교된다. 4차 산업혁명 정책처럼 정부의 입맛에 맞는 조사와 사회적 갈등이 큰 조사 결과를 형평성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당초 과학기술 각 분야 전문가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포함해 새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며 “응답자 중 에너지 분야가 49%에 이르러 과학기술계 전체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공개 시점과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최대 단체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관한 의견을 너무 안이한 방식으로 수렴하려다 혼선만 조장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설문조사를 기획한 이우일 과총 부회장(서울대 교수)은 “처음 설문지를 만들 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이렇게 빨리 진전될지 몰랐고 응답자가 특정 집단에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설문조사 작성뿐 아니라 분석 과정에 통계 전문가가 참여하지도 않았다.

과총은 이번 설문조사가 과학기술계 전체 의견을 대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에는 전문가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책 결정을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탈원전을 주장하는 소수 단체에 의해 정부 정책이 결정돼서는 안 되며 원자력 인력 양성이 위축돼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