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아메리카노, 미국서 애국자의 커피였다는데…
1987년 개봉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 미국 캘리포니아 황량한 사막의 낡은 카페를 배경으로 합니다. 미국을 여행하던 독일인 부부와 카페 주인인 브렌다 사이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룹니다. 중요한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독일인 부부가 갖고 있던 노란색 보온병. 진한 커피가 담겨 있습니다. 바그다드 카페의 커피 기계가 고장 나자 주인은 이 보온병 속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어줍니다. 커피잔을 들이킨 한 미국인 손님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바닥에 내뱉어 버리죠. 독극물 아니냐면서. 그때 카페 주인이 다시 와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그제야 손님은 웃습니다. “이제야 맛이 괜찮네.”

흙탕물 같은 검은 액체에 물을 붓자 마법처럼 맛있어지는 그것. 바로 ‘아메리카노’입니다. 국내 스타벅스에서 음료 10잔을 팔면 6잔가량이 아메리카노라고 하니, 한국인들의 아메리카노 사랑은 유별납니다. 오늘 ‘알쓸커잡(알고보면 쓸데있는 커피 잡학사전)’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일반적인 커피 메뉴가 된 아메리카노의 유래에 대해 알아봅니다.

유럽에서 커피 주문을 하면 당황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용감하게 “커피 주세요” 하면, 한참 뒤 지름이 엄지손가락만한 미니 커피잔이 나오죠. 이럴 땐 도저히 목에서 넘어가지 않아 ‘핫 워터’를 추가 주문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딜 가나 또박또박 ‘아·메·리·카·노’를 외칩니다.

아메리카노는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해 마시는 커피입니다. ‘아메리카노’의 어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병사들의 일부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도저히 못 마시겠다며 물을 타 마셨습니다. 유럽 병사들이 ‘양키들이나 먹는 구정물’이라는 조롱의 뜻으로 ‘아메리카노’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2차대전 훨씬 전부터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된 건 18세기 ‘보스턴 차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커피보다 홍차를 즐겨 마셨습니다.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부여했고, 이 회사를 거치지 않고 수입되는 차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했지요. 차가격이 뛰자 미국 상인들은 저항했고, 1773년 12월16일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선박을 습격해 수백 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에선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게 애국 행위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커피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이죠. 홍차와 가장 비슷하게, 연한 농도의 커피를 마셨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이 없었다면, 스타벅스가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홍차 전문점이 돼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