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탈원전, 현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정부는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의견수렴 절차라곤 거의 없었던 결정인데도 말이다.

정부는 탈원전 반대를 그저 야당의 의례적 반발이나, 소위 ‘원전 마피아’들의 밥그릇 투쟁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아무리 마피아라 하더라도 제 입 풀칠을 위해 나라가 온통 방사능으로 물들어도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부는 망설임이 없다. 확신도 확신이지만, 무엇보다 책임질 일이 없다. 이 정부가 탈원전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작용은 모두 차기 정부 몫이다.

기억해보자. 2011년 벌어진 ‘9·15 블랙아웃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노무현 정부였다. 유가 급등에도 전기요금을 낮게 가져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발전소 건설은 등한시했다. 건설에만 최소 7~8년이 걸리는 원전이고, 석탄화력도 4~5년이다. 이명박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노무현 정부가 져야 할 책임까지 온통 뒤집어써야 했다. 우리의 전력 사정은 이렇게 5~7년을 주기로 과잉과 부족을 되풀이해 왔다. 책임질 사람은 늘 사라진 뒤다. 망각의 정부다.

따져보자. 반대 진영은 전력 부족부터 우려한다. 하지만 이 정부 내내 전력은 남아돌게 돼 있다. 9·15 사태에 놀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에 과잉 투자한 결과다. 올해도 아무리 전력 소비가 늘어도 11.3%의 예비율은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넉넉하다. 원전 몇 기가 가동을 멈춰도 이 정권에서 전기 부족으로 난리 칠 일은 없다.

전기요금이 올라갈 것이라는 걱정도 마찬가지다. 인상 요인이 있어도 5년쯤은 버틸 수 있다. 모든 것을 차기 정부로 밀어버리면 될 일이다. 정부는 대신 환경만을 부르짖으며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독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 또한 2030년 20%로 설정돼 있다. 강산도 바뀐다는 13년 뒤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여기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는 간단한 숫자가 아니다. 한국의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6.6%라는 것부터가 허구여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인정하는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1%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대부분이 국제적으론 인정받지 못하는 폐기물 바이오에너지 폐가스에서 나오는 탓이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의 부작용이다. 우리가 신재생에너지로 여기는 태양광이나 풍력은 고작 0.7%, 0.2%에 불과하다.

그 1%의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느라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고 이 난리다. 부지나 환경, 지역과의 마찰은 모두 개발 당사자들 몫이다. 정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탈원전을 결정한 나라는 고작 4개국이다. 독일은 전력예비율이 100%에 가까운 나라다. 스위스는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프랑스 내 원전 2기 운영권을 갖고 있다. 게다가 가장 훌륭한 재생에너지라는 수력발전 비중이 55%다. 그뿐인가. 두 나라는 전력이 모자라면 이웃 나라에서 사다 쓰면 된다. 이러니 탈원전에도 끄떡없다.

우리는 에너지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나라다. 수시로 방향이 바뀌는 바람 탓에 풍력도 적합하지 않고, 긴 장마와 미세먼지 탓에 태양광도 신통치 않다. 게다가 전력망은 외딴섬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전기를 융통해 올 수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 기술의 원전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가겠다는 판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논의부터 하자. 탈원전 공론화에 25년이 걸린 독일이다. 스위스는 33년간 국민투표를 다섯 차례나 거쳤다. 우리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데도 말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공사부터 중단한 신고리 5·6호기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오늘 공론화 추진기간 동안 공사를 중단한다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원전 사업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온 이사들이다. 이분들, 지금까지 해온 일은 까맣게 잊고 거수기 역할이나 할지.

전문가를 제외한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해 원전처럼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걸 새로운 형태의 숙의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정부다. 그건 말장난이다. 전문가에게 묻고 국회에서 국민 의견을 묻는 게 정상적이다. 그게 민주주의다. 책임지지 않을 일을, 그것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이렇게 결정해선 곤란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