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가 된 기업 로비…'문화 문턱' 낮추다
LG유플러스는 지난 4월 서울 한강로3가에 있는 본사 1층 로비에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약 55㎡ 크기의 공간 ‘아트&힐링갤러리’를 마련했다. 전시벽을 치고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조명과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자 등을 설치했다. 지금은 고명근 등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갤러리를 만들었다”며 “지역 주민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제주시 본사 로비에 약 150㎡ 크기의 전시장 ‘갤러리닷원’을 열었다. 제주 출신이거나 현재 제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곳에선 4월 개막한 설동기 작가의 판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방문객들은 “올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있는 전시, 생각지 않은 좋은 그림을 만나게 된다”는 등 관람 후기를 남겼다.

지방 확산, 공간 넓히기도

회사 1층 로비를 갤러리로 꾸미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LG유플러스, 카카오 외에도 한국예탁결제원, 코오롱그룹, 대한항공, 한국경제신문사 등이 최근 수년 사이에 로비를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에 가장 많긴 하지만 경기, 대구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경기 과천시 별양동 본사, 코오롱모터스 대구지점(황금동)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광주광역시 농성동(코오롱모터스 광주지점)에도 갤러리가 있었으나 확대 개편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다.

1층 공간이 모자라 다른 층까지 합쳐 갤러리로 만드는 회사도 있다. 흥국생명은 오는 10월 서울 신문로1가 본사에 1층 로비와 3층 전체(약 1000㎡)를 쓰는 세화미술관을 열 예정이다. 2010~2016년 운영한 일주&선화갤러리를 확대하는 것이다.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의 김소연 주임은 “점심시간에 잠깐 갤러리에 들르는 직장인이 많다”며 “서울역사박물관에 견학 왔다가 갤러리를 찾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로비 갤러리는 적게는 연간 4~5회, 많게는 10회 이상 전시를 한다. 기업 로비 갤러리의 ‘효시’ 격인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의 한경갤러리는 연간 약 20회에 걸쳐 전시회를 연다. 가장 많이 전시회를 여는 서울아산병원 갤러리는 약 45회에 이를 정도다. 흥국생명·LG유플러스·코오롱그룹·신촌세브란스병원은 기획전, 카카오·예탁결제원·한경·대한항공·서울아산병원은 개인전을 위주로 하는 특징이 있다.

예술 인프라에 크게 기여

기업이 로비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은 주로 사회공헌 목적에서다. 작가를 지원하고 미술 관람 인프라 확대를 돕는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작가보다는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 여의도 본사 로비에 KSD갤러리를 운영하는 예탁결제원은 전시회 참여 작가들을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해 심사위원단을 꾸렸을 정도다.

작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대부분 ‘작가와 직접 거래하라’며 연결해준다. 판매 중개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수료가 적어 각종 비용을 빼면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다.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게 아니어서 일반 갤러리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다.

작가들도 기업 로비 갤러리가 늘어나는 흐름을 반긴다. 일반 갤러리에 비해 훨씬 많은, 하루 수천 명이 오가며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대 작가로 선정되면 대관료도 따로 내지 않는다.

로비 갤러리는 10~20년 전 대형 종합병원이 환자의 심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이 1996년 동관 로비에,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이 2009년 본관 로비에 갤러리를 열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