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완공된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본사 센터원빌딩. 지상 36층 규모의 이 빌딩은 미래에셋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2010년 완공된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본사 센터원빌딩. 지상 36층 규모의 이 빌딩은 미래에셋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미래에셋증권이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것은 2015년 9월9일이었다. 대우증권을 인수하려면 넉넉한 종잣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 시가총액(1조6000억원)의 75%에 해당하는 자금을 조달한다는 소식에 시장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유상증자 발표 다음날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17.56% 떨어졌다. 경쟁 증권사들은 앞다퉈 목표주가를 끌어내렸다.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인수 실탄’ 조달 능력 등을 감안할 때 미래에셋이 한국투자증권과 KB금융지주를 누르고 대우증권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전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3개월 뒤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됐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2조4000억원을 인수가로 써낸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통 큰 베팅’은 대성공이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쳐진 미래에셋대우는 자본금 6조7000억원(지난해 말 기준) 규모의 국내 최대 투자은행(IB)으로 재탄생했다.
박현주 "투자 멈춘 나라는 답 없다…4차 산업혁명서 기회 찾아야"
◆‘한국의 벅셔해서웨이’를 꿈꾼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대우의 롤모델로 벅셔해서웨이를 꼽는다. 본업은 보험업이지만 대부분 수익을 투자활동을 통해 거둬들이는 벅셔해서웨이처럼 미래에셋대우도 단순 브로커리지(위탁매매)나 주식 트레이딩이 아니라 ‘투자로 돈을 버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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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우증권 인수에 시장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하려면 ‘전통의 IB 강호’인 대우증권이 필요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그룹은 자산운용업에서 출발한 탓에 IB 부문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며 “박 회장은 ‘대우증권의 투자 역량만 품을 수 있다면 1조원 비싸게 사도 남는 장사’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이르면 10월부터 단기금융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에 한해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해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한 덕분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기자본을 8조원 이상으로 늘려 종합투자계좌(IMA) 업무에도 뛰어든다는 구상이다. IMA 인가를 받으면 한도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셋대우의 투자 여력이 크게 늘어나 박 회장이 꿈꿔온 ‘제대로 된 투자회사’가 완성된다.

◆멈추지 않는 ‘투자 DNA’

박 회장은 미래에셋그룹이 창립 20년 만에 368조원을 굴리는 초대형 금융그룹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로 ‘끊임없는 투자’를 꼽았다. 누군가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 박 회장은 “그래도 필요한 투자는 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그렇게 투자할 때마다 미래에셋의 몸집은 커졌다.

창업 초기 투자 방향은 ‘영역 확대’였다. 벤처캐피털로 출발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로 범위를 넓혔다. 2005년 SK생명을 인수하며 생명보험업에도 진출했다. 영역을 확장한 뒤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불렸다.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을 손에 넣어 증권업계 1위가 됐고 미래에셋생명은 PCA생명을 인수해 업계 5위로 발돋움했다.

외부 기업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미래에셋PE를 통해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거느린 미국 아쿠쉬네트를 1조3000억원에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작년부터는 네이버 셀트리온 GS홈쇼핑 등 국내 주요 기업과 함께 신성장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펀드도 조성했다.

박 회장의 최근 투자 키워드는 ‘해외’와 ‘4차 산업혁명’으로 요약된다. 지난 23일 베트남 생명보험사를 인수한 데 이어 인도 증권사와 글로벌 컴퓨터 알고리즘 회사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26일에는 네이버와 함께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언젠가 박 회장에게 “한국 사회에 왜 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을 먹여 살린 제조업은 중국에 다 따라잡혔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투자는 필수적입니다. 투자를 해야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도 풀립니다. 투자자를 찾을 수 없는 나라에는 답이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투자의 적기입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