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당 임금' 높아지니…일 할 시간을 줄이더라 > 2013년 8월 미국 시애틀에서 최저시급 15달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지난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13달러로 올랐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어 근로소득은 되레 감소했다. 시애틀AP연합뉴스
< '시간당 임금' 높아지니…일 할 시간을 줄이더라 > 2013년 8월 미국 시애틀에서 최저시급 15달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지난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13달러로 올랐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어 근로소득은 되레 감소했다. 시애틀AP연합뉴스
최저임금 올린 시애틀의 월급 봉투 '홀쭉해진' 밤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비숙련·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체 근로시간이 줄면서 고용인구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의 의도와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또다시 불붙었다.

◆저소득 근로자에게 불리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는 26일(현지시간)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시애틀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11달러에서 13달러로 인상된 뒤 고용과 근무시간 변화를 다양한 업종에서 광범위하게 추적했다.

최저임금 올린 시애틀의 월급 봉투 '홀쭉해진' 밤
결과는 예상과 딴판으로 나왔다. 시간당 인건비가 19달러 미만인 저임금 근로자의 월 소득이 오히려 125달러(6.6%) 줄어들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시간당 임금이 3.1% 올랐지만 근로시간은 9.4% 감소해 나타난 결과다. 시간당 임금 상승으로 월 소득이 54달러 증가한 반면 근로시간 감소로 임금이 179달러나 줄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저임금 근로자가 받는 평균 월급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1897달러에서 1772달러로 줄었다. 시애틀 전체로도 연간 근로시간이 1400만 시간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노동자 숫자로 환산하면 5000명에 달한다.

보고서는 “전체 고용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고용주가 저임금 일자리를 숙련된 고임금 일자리로 대체했다”며 “시간당 19달러를 넘게 받는 노동자는 크게 증가했지만 그 이하를 받는 숫자는 줄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저임금에 민감한 식당은 고용주들이 경험이 풍부한 직원 고용을 크게 늘리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에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제이컵 빅더 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을 ‘양날의 칼’에 비유했다. “시애틀과 같은 방식으로 임금을 급속도로 올리면 고소득 근로자의 임금과 고용은 늘지만 실제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저임금 찬반논쟁 재점화

최저임금 올린 시애틀의 월급 봉투 '홀쭉해진' 밤
시애틀은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장’으로 여겨진다. 가장 먼저 최저임금을 2021년까지 시간당 15달러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2014년 9.47달러에서 2015년 11달러로, 지난해 다시 13달러로 올렸다. 미국 연방정부가 제시한 최저임금 7.25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저소득 근로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시애틀 최저임금 인상이 수혜 대상인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빈곤층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는 식당 등 서비스업종은 고용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UC버클리의 연구 결과를 부각시키며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미국에선 카페,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팁을 받는다. 주별로 다르지만 팁의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요식업의 인건비 부담은 제조업보다 훨씬 작다.

NYT는 또 워싱턴주립대의 연구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와 고용시장 변화를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호황기를 누리는 시애틀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고용주가 임금을 올리면서 저소득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드 머리 시애틀 시장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워싱턴주립대의 연구 결과를 반박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격차를 줄이고 경제적 사다리를 제공함으로써 빈곤층을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애틀의 실업률이 3.2%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