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성수기를 맞이해 에어컨이 불티나듯 팔려나가고 있다. 26일 서울의 유통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에어컨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여름 성수기를 맞이해 에어컨이 불티나듯 팔려나가고 있다. 26일 서울의 유통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에어컨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LG전자는 최근 에어컨 생산·마케팅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지난해까지는 6~8월을 에어컨 성수기로 봤지만 올해는 4~8월로 2개월 늘려 잡았다. 2014년 120만대에 그쳤던 에어컨 판매량이 3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뛰면서 시장 자체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에어컨 시장은 말 그대로 ‘대폭발’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보내달라는 소비자들의 성화에 제조업체들의 창고는 재고가 들어설 겨를이 없다. 에어컨 특유의 ‘겨울 예약’ 판매시스템도 붕괴됐다. 에어컨은 이제 ‘사계절 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콧노래 부르는 업체들

에어컨, 4계절 필수품으로…'1가구=1에어컨' 공식 깨졌다
에어컨 판매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무더위다. 올해는 지난달 3일 이미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돌파하며 일찌감치 무더위가 시작됐다. 5월3일 기온이 30도를 넘어선 것은 85년 만에 처음이다. 김만석 대유위니아 이사는 “33도 이상 날씨가 사흘 이상 지속되면 따로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에어컨업계의 속설”이라며 “올해는 장맛비도 유난히 적을 것으로 예보돼 소비자들이 선선히 지갑을 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심했던 것도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뒤늦게 에어컨 구입을 결정했다가 주문 폭주로 끝내 에어컨을 인도받지 못한 사람들이 올 들어 앞다퉈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득 수준 증가로 ‘1가구=1에어컨’ 등식도 깨지고 있다. 29일간 폭염이 지속되며 최악의 무더위를 기록했던 1994년 1만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7561달러까지 올랐다. 거실에 에어컨 한 대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 방에도 에어컨 1~2대를 추가로 설치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거실용 에어컨과 안방용 에어컨을 동시에 설치하는 ‘투인원(2 in 1)’ 서비스는 2~3년 전만 해도 부유층이나 사용했지만 지금은 중산층 4인 가구로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더욱이 올해 아파트 입주물량은 40만 가구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신규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견 에어컨업체인 오텍과 대유위니아 등의 올해 실적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캐리어 에어컨을 생산하는 오텍의 영업이익은 올해 370억원으로 2015년의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료 부담도 줄어

지난해 527만 가구로 2010년 대비 27% 증가한 1인 가구수도 ‘에어컨 특수’의 중요한 요인이다. 작은 면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벽걸이 에어컨의 판매비중은 올 들어 30~40%까지 늘어났다. 벽걸이 에어컨은 2010년 이전만 해도 판매량이 미미해 별도 집계를 하지 않던 상품이다.

에어컨 제조업체들의 기술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공기청정기능과 제습기능을 갖춘 에어컨이 잇따라 출시되며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에어컨을 구입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올 들어 대유위니아에서 판매된 스탠드형 에어컨의 70%가 이 같은 기능이 결합된 복합형 에어컨이다. 회사 관계자는 “공기청정기를 따로 사느니 공기청정이 가능한 스탠드형 에어컨을 구입하겠다는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기료 누진제가 완화되면서 에어컨 구매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신제품의 에너지 효율도 크게 높아졌다. LG전자에 따르면 월평균 소비전력이 시간당 300㎾인 가정은 기존 에어컨을 동일한 성능의 신제품으로 교체하면 전기료가 매월 10만8100원 절약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에 에어컨 신제품을 출시한 뒤 4월까지 예약 주문을 받으며 제품 성능을 개선해 6월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가던 에어컨 생산·유통 사이클도 바뀌고 있다. 올 3월까지 에어컨 판매량이 작년 동기 대비 3배나 늘며 예약 판매와 본 판매의 차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