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 큰 협력' 내비치며 실리 챙겨야
약간의 긴장관계에 있는 한·미 두 나라 지도자가 처음 만날 때는 첫 대면, 첫인상이 아주 중요하다. 곧 미국에 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단단히 챙겨야 할 게 하나 있다. 트럼프식 악수(!)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작년 가을 거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상대의 팔목을 거의 꺾어버렸다. 이 모습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고 니에토는 이 사진 한 장에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봄 유럽에 가서 악수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훅 끌어당겼으나 이 젊은 프랑스 지도자는 만만치 않게 상대를 오히려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버렸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 장난 같은 이 야릇한 악수 해프닝으로 프랑스에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민감한 이슈를 앞에 두고 찾아오는 한국의 대통령을 그 독특한 악수를 하며 기를 꺾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때 구차하게 말려들면 이미지 게임에서 한 수 밀리며 정상회담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인상을 중요시하며 화끈하게 주고받는 통 큰 협상을 좋아하는, 개성이 아주 강한 지도자다. 이런 상대에겐 복잡한 조건부 문장이나 복문을 쓰며 설득이나 설명하려 들기보다는 ‘협력하겠다는 소프트 시그널’을 보내 일단 좋은 첫인상을 먼저 주고 나서 얻어낼 걸 챙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지난 4월 플로리다 미·중 정상회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선기간에 중국을 악질 무역국가로 비난한 것을 볼 때 한판 크게 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서비스 시장개방, 소고기 수입이라는 큰 선물을 휙 던지니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그간의 엄포가 쑥 들어가고 ‘시진핑을 좋아한다’라는 트윗을 날릴 정도로 관계가 부드러웠다. 일단 중국의 협상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방미하는 우리 대통령으로부터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대미흑자 해소다. 무역에 대한 그의 셈법은 아주 단순하다. 대미 무역흑자를 누리는 나라는 모두 미국인의 ‘일자리 도둑’이다. 따라서 한·미 FTA가 발효된 뒤 한국의 대미 흑자가 두 배나 늘어났으니 오바마 정부에선 ‘골든 스탠더드’로 칭송받던 한·미 FTA가 졸지에 미국인의 일자리 도둑 FTA가 돼 버렸다.

FTA 철저한 이행, 대미투자 증대 등 구구절절한 설명은 수행한 장관들에게 맡기고 이번 정상회담에선 새로 취임한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기분 좋은 통 큰 소프트 시그널 하나만 보내면 된다. “재임기간 중 대미흑자를 과거 수준으로 대폭 줄이겠다.” 그날 저녁 당장 트위터에 ‘코리아가 무역흑자를 줄이기로 했다 생큐, 프레지던트 문!’이란 트윗이 뜰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그들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큰 성과를 냈다는 생색을 내는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국내 정치에서 시달리는 그는 여느 때보다도 대외 협상에서의 업적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과의 이런 약속은 지킬 수 있다.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을 전적으로 중동과 동남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연차적으로 이 중 일부만 미국으로 전환하면 에너지 안보에도 좋고 한·미 통상갈등도 완화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미국 지도자들과 전혀 다르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아주 거칠게 반발하며 행동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슨 돌출 변수가 튀어나오지 않나 하는 우려와 긴장감이 맴돈다. 어떤 미국 언론은 트럼프를 ‘으르렁거리는 사자’에 비유한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주고받기식 통 큰 협상을 할 줄 아는 사자 같은 지도자가 교활한 여우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협상전략을 사전에 철저히 분석하고 국가의 앞날을 길게 보며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잘만 협상하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의외의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국제협상학 syahn@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