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으로 만지작거리던 경유세 인상 카드를 도로 집어넣었다. 이례적으로 대책 수립과 관련해 예정돼 있던 공청회 개최와 연구결과 보고서 작성도 하기 전에 서둘러 검토를 철회했다. 경유세 인상안을 담은 에너지 세제 개편 시나리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빗발쳤고, 여기에 화들짝 놀라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 공청회도 열기 전에 "경유값 인상계획 없다"
경유세 올려봐야 ‘허사’

기획재정부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공청회안을 미리 확인한 결과 경유 상대가격 인상의 실효성이 낮게 나타났다”며 “정부는 경유세율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국책연구기관들이 경유세 인상에 따른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분석한 결과 현행 휘발유의 85% 수준인 경유 가격을 최대 125% 수준으로 올려도 국내 미세먼지 감소폭은 1%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세먼지는 해외에서 유입되는 비중이 큰 데다 유류 소비는 가격 변화에 비탄력적이어서 세금 인상에 따른 소비 억제 효과가 적다”며 “경유세를 인상하면 유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소형 화물차주들의 부담이 커지는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6월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한 뒤 경유세 인상을 논의하기 위해 조세재정연구원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교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2030년까지 개인용 경유차를 퇴출시키겠다”고 공약해 연구용역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됐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최근 마련한 용역안 초안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를 대상으로 휘발유 가격을 100 기준으로 유지할 때 현행 85 수준인 경유값을 최소 90에서 12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어느 경우든 경유의 상대가격은 올라가는 시나리오여서 정부가 경유세 인상으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공청회도 안 열고 서둘러 접어

정부가 서둘러 경유세 인상을 접은 것은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이 다음달 4일 공청회에서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면 기재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은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8월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예정된 절차를 무시한 채 경유세 인상을 부인할 만큼 정부가 다급했다는 얘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유세 인상에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쳐 업무를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기재부의 이날 발표는 청와대 및 여당과의 조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편안은 특히 서민층의 세 부담을 높이는 사실상의 ‘증세안’으로, 급격히 추진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 내에서도 경유세 인상안에 대해 “정부의 부자 증세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개인용 경유차 퇴출’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경유세 인상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달 15일 미세먼지 감축 대책을 지시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기재부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에서 경유세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여운을 남겼다.

기재부는 국민개세주의 차원에서 추진하려던 근로소득 면세자 축소, 국산 주류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주세 체계를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도 올해 세제개편에서 제외하는 대신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 방안 역시 ‘서민 증세’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