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공공기관 지역인재 30% 할당제’를 두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본사 이전지역 근무인력 비중이 30%를 넘지 않는 기관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채용할당제를 밀어붙일 경우 역차별과 형평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단독] 한전, 전국 사업장 255곳…신규채용 30% 광주·전남서만 뽑으라니
◆본사 소재지 출신 30% 뽑아라

문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 소식이 전해진 지난 22일, 전국 각지에 흩어진 공공기관은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종일 분주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지역인재’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궁금해하는 기관이 특히 많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지역인재’는 공공기관 본사가 이전한 지역 출신 인재, 즉 ‘이전지역 인재’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지역인재’는 ‘지방인재’와 다른 개념이다. 2014년 11월 시행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법’과 그 시행령은 공공기관에 신규 채용 인원의 35% 이상을 수도권 외 지방대학 출신으로 채우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도권 외 지방대학 출신’이 바로 지방인재다.

이에 비해 지역인재의 근거법률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특별법’이다. 이 법은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은 이전지역 대학 졸업자(고졸 채용 시는 해당 지역 고졸자)를 채용에서 우대할 것을 권고한다. 지역의 범위는 해당 광역시·도로 한정된다. 예컨대 울산광역시에 있는 한국동서발전은 울산 출신만 인정되고 인근 부산이나 경북 출신은 30% 할당 범위에서 제외한다.

◆“전국에 사업장 퍼져 있는데…”

공공기관들은 “본사보다 전국 사업장 근무 인원이 훨씬 더 많은 인력운영 여건을 고려하면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도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말 기준 지방 혁신도시 등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직원 수 2000명 이상) 22곳 중 18곳 본사 근무인력이 전체 직원 수의 30% 미만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전북 전주), 근로복지공단(울산), 한국전력(전남 나주), 한전KPS(나주), 한국수력원자력(경북 경주) 등 6곳은 본사 인력이 전체의 10%를 밑돌았다.

이들 기관은 전국 각지에 사업장이 고루 퍼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동서발전은 울산 본사 근무인원이 270명에 불과하지만 당진화력발전소가 있는 충남 당진 근무인원은 625명에 달한다. 당진에선 벌써부터 “오염물질을 뿜어내는 발전소는 여기 있는데 정작 사람은 타지 출신을 우선해서 뽑느냐”는 말이 돌고 있다.

애초에 합리적 근거가 빈약한 지역인재 개념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행법규에 따르면 서울에서 20년 거주하다 지방대에 진학한 사람은 지역인재에 해당하지만, 지방에서 20년 살다 서울로 진학한 사람은 지역인재가 아니다. 울산처럼 지역에 대학이 3곳(울산대 울산과학대 춘해보건대)에 불과한 경우 채용 가능한 인력풀이 지나치게 좁아져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얘기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과도 모순

채용 때 지역인재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것은 출신대학과 출신지를 채용과정에서 원천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지역인재 할당 채용이 의무화되면 헌법상 직업선택권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지금과 비슷한 지역인재 할당제 도입을 검토했다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채용장려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방과 지방대학을 살리겠다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굳이 본사 이전지역 인재로 대상을 국한하기보다는 수도권 외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지방인재로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