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왓슨을 시연하는 모습. 왓슨은 환자 의료정보 입력 후 몇 초 만에 치료법을 내놓았다. / 사진=최혁 기자
왓슨을 시연하는 모습. 왓슨은 환자 의료정보 입력 후 몇 초 만에 치료법을 내놓았다. / 사진=최혁 기자
인천 남동구의 가천대 길병원 암센터 간판은 ‘인공지능 암병원’이다. ‘국내 최초 인공지능 암센터’ 문구의 현수막도 걸려있다. 그 주인공은 IBM의 의료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 길병원은 지난해 국내 병원 가운데 최초로 암치료용 AI 왓슨을 도입했다.

과연 빨랐다. 환자의 나이, 성별, 몸무게, 혈액검사 결과, 호르몬 수치, 수술 종류,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등 정보를 입력하고 ‘애스크(Ask) 왓슨’ 버튼을 클릭했다. 몇 초나 흘렀을까. 화면에 치료법이 떴다. 치료에 쓰이는 약제와 생존율, 항암제 부작용 등도 알려줬다. 최우선 추천과 그 외 추천, 추천하지 않는 목록을 색깔별로 정리해 제시했다. 또 다른 버튼을 누르니 직접적 근거가 되는 논문을 보여줬다. 왓슨은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방암 수술 전력의 47세 여성 환자에게 항암치료 4~6개월, 이후 방사선치료 3~6주 등의 처방을 추천했다.

“정말 빠르죠?” 왓슨 도입을 주도한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장(신경외과 교수·사진)이 웃어보였다. “바둑돌 던지고 의사가 된 알파고라 이해하면 되느냐”고 묻자 “정확히는 알파고보다 영화 ‘아이언맨’의 AI 비서 쟈비스에 가깝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언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왓슨은 '똑똑하고 빠른 비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 사진=최혁 기자
이언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왓슨은 '똑똑하고 빠른 비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 사진=최혁 기자
- 무슨 얘기인지.

“바둑은 게임이다. 승패가 중요하다. 의료는 다르다. 인간 의사와 AI 의사의 대결? 누구의 실력이 더 나을까? 그건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왓슨은 똑똑하고 빠른 비서다. 잘 사용하면 인간 의사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의사가 아이언맨처럼 되는 거지.”

- ‘경험담’인가.

“자꾸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알파고 영향이다. 워낙 알파고 쇼크가 컸으니. AI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이 깔려있다. 그렇게 볼 필요 없다. AI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 사실 왓슨은 고전적 AI다. 빅데이터 기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Q&A 머신이다.”

- 인간 의사와 의견이 다를 때도 있을 텐데.

“AI와 인간 의사 소견이 충돌하면 어느 쪽을 택할까, 그 질문인데(웃음). 현실은 좀 다르다. 대부분 판단이 일치한다. 의견이 갈린다 해도 환자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기보다 왜 다른지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그 과정이 사람의 실수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다만 의사의 ‘취향’, 예컨대 약을 쓰는 걸 좋아하는 의사가 있고 아닌 의사가 있는데. 의사 판단대로 하든 왓슨 추천대로 하든 상관없는 취향의 문제일 때, 어느 쪽을 택할지 흥미삼아 환자에게 물어본 적은 있다.”

- 그랬더니.

“의견이 갈렸을 때 왓슨을 택한 환자가 80% 가까이 됐다. 의사들에게도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AI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 왓슨은 어떤 식으로 진료하나.

“왓슨은 미국 3대 암센터 중 하나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SKCC)의 제자다. 딥러닝(심층학습)을 통해 언어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 체화된 노하우인 ‘암묵지(暗默知)’까지 익혔다는 뜻이다. 의료행위란 게 암묵지의 영역이 크다. 실제로 왓슨과 MSKCC의 진단은 90% 이상 일치한다.”

- MSKCC에서 치료받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의미가 큰 수치다.”

- 어떤 점에서?

“왓슨은 MSKCC를 직접 방문해 진료 받는 것과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포천지가 언급했다. 한 마디로 ‘의료민주화’다. 적어도 암환자가 치료를 받고자 할 때는 돈이 많든 적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차별 없이 고품질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 의료민주화라, 그럴 수 있겠다.

“국내도 삼성·서울대·세브란스·아산병원 같은 소위 ‘메이저 병원’, 그중에서도 이름난 의사만 찾는다. 환자가 몰려 몇 달씩 대기해도 암환자 심리가 그렇다. 왓슨이 이런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메이저 병원에서 진료 받은 사실을 숨기고 길병원을 다시 찾는 환자가 있더라. 왓슨과의 비교가 시작됐다.”
이언 교수는 "왓슨이 의료 관행과 문화를 좋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최혁 기자
이언 교수는 "왓슨이 의료 관행과 문화를 좋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최혁 기자
왓슨 도입이 쉬웠던 건 아니다. 이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97년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고 했다. 2011년 왓슨은 미국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에서 기존 우승자들을 물리치고 왕중왕전 우승을 거머쥐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2014년, 왓슨의 암진단 일치율이 평균 96%에 달한다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발표 결과를 접한 이 교수는 생각을 굳혔다. 왓슨을 병원에 들여오자는 그의 주장은 작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 신경외과 의사와 AI, 딱 와 닿진 않는 조합인데.

“거기에는 환경적 요인도 있다. 길병원이 국내에서 전산화를 처음 도입한 병원인데 제가 병원 기획실장 업무를 10년 이상 했다. 그러면서 IBM과 오래 함께 일했다. 자연히 IT(정보기술) 쪽에 관심이 가고 네트워크도 생기더라. 2014년부터 IBM과 왓슨 도입을 준비해왔는데 알파고 덕분에 급물살을 탔다.”

- 실제로 왓슨을 써보니 어떤가.

“빠르다. 그리고 빨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의료행위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하루 전에만 약을 썼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 하고 땅을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긴장 효과’다. 왓슨 도입의 순기능이라 생각한다.”

이언 교수는 왓슨이 '의료민주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 사진=최혁 기자
이언 교수는 왓슨이 '의료민주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 사진=최혁 기자
- 긴장 효과라면?

“비교가 되니 부담스럽지 않겠나. 의사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해 온다. 진료도 충실히 하고.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의사들 스스로는 안 변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변했다(웃음). 왓슨이 의료 관행과 문화를 굉장히 좋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

- 긍정적인 측면만 보는 것 아닌가. ‘불안감’으로도 읽히는데.

“의사는 통째로 대체되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의사 능력 중 일부만 AI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우리는 전화번호를 암기하는 능력은 거의 휴대폰에 내줬다. 그게 문제가 되나? 아니잖나. 대신 다른 능력을 키우니까.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에 방대한 환자 기록을 읽고 관련 논문을 찾아내는 능력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다. 물론 전공에 따라 AI의 대체율이 높은 곳은 있겠지. 영상의학과 같은 케이스가 그렇다.”

- 여전히 판단과 책임은 인간 의사의 영역에 속한다.

“왓슨의 진단을 따랐다가 의료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 AI에 법인격을 부여해 의사면허증을 발급하지 않는 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인간 의사의 책임이다. 현재로선 AI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빨리’ 받아들여 활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 된다.”

- 그런 점에서 보면 길병원이 앞서가는 셈이다. 왓슨에 대한 의구심은 미국인 위주 데이터베이스(DB)가 한국인과 얼마나 잘 맞느냐 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한국인 DB 축적이 중요하다. AI 발전의 관건은 데이터 아닌가.

“암치료는 시발점이다. 앞으로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 관리부터 병원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환자실 관리까지 AI를 들여올 것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AI와 친숙해져야 한다.”

- 그런데 메이저 병원들은 왜 도입 안 할까.

“절실하지 않아서다. 가만히 있어도 암환자가 몰려드니까. 또 병원 내 의사들 저항도 크고 실무적 걸림돌도 있을 것이다. 혹은 ‘AI 신세를 안 져도 될 만큼 완벽한 병원 시스템을 갖췄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그건 AI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MSKCC는 환자가 없거나 시스템이 미비해 왓슨을 쓰나?”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