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2일 휴대폰 보조금 대신 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통신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김정우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 최민희 국정기획위 통신부문 자문위원. 연합뉴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2일 휴대폰 보조금 대신 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통신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김정우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 최민희 국정기획위 통신부문 자문위원. 연합뉴스
국정위, 기본료 폐지는 제외했지만 …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2일 발표한 연간 4조6273억원 통신비 절감 대책과 관련, 통신업계에선 시장 자율로 정해지는 통신 요금을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초법적 정책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통신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번 대책의 다섯 가지 논란 사항을 정리해 본다.
논란만 키운 통신비 인하…통신사 "소송할 것" 시민단체 "공약 후퇴"
(1) 장관 재량으로 요금 할인…"단통법 위배"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조정(20%→25%)은 인위적 가격 통제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택약정 할인제는 휴대폰을 살 때 단말기 공시지원금(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매달 통신요금의 20%(현재 기준)를 할인받는 제도다.

업계에서는 할인율을 25%로 확대하면 통신 3사의 연간 매출이 5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선택약정 할인율 조정은 법률 개정 없이 고시 변경으로 가능하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결정하면 바로 실행할 수 있다. 선택약정 할인제 시행 근거인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관련 고시에는 ‘공시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명시돼있다. 현재 공시지원금을 받은 이용자의 평균 요금 할인혜택이 1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선택약정 할인율(20%)을 높일 게 아니라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게 통신사들의 주장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할인율 상향 조정은 공시지원금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하라는 단통법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돼 위법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2) 취약계층 요금 감면…"기업 돈으로 생색"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수급자와 저소득층 취약계층에 월 1만1000원의 요금 감면 혜택을 주는 대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민간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복지 확대에 강제 투입하게 하면서 정부가 생색을 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정기획위가 시장 개입의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버렸다”며 “통신사 이익을 복지정책에 쓰고 싶다면 통신사에 국가를 상대로 한 비용 청구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 3사는 정부가 매년 주파수 할당대가, 전파사용료 등으로 징수하는 1조원 규모의 준조세 지출 내역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모든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3) 보편요금제 도입…"요금 체계 뒤흔들어"

2만원대의 4세대통신(LTE) 보편요금제 출시 역시 민간기업의 팔을 비틀어 요금을 규제하는 반(反)시장적인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 혜택을 월 2만원 요금에 주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3만원 초반인 통신 3사의 최저요금제(음성 200분, 300메가바이트(MB)) 대비 1만원 이상 싸면서 데이터 제공량은 세 배 이상 많다. 정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보편요금제 출시를 강제할 방침이다.

업계에선 정부가 민간기업의 요금 설계에 개입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요금 가격에 따라 제공 혜택이 달라지는 게 시장 원리인데 맨 밑단을 건들면 요금 체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놓고 (통신사에) 모든 요금제를 다시 손질하라는 얘기”라고 했다.

(4) 시민단체 참여 통신비 감시…"시장 왜곡"

시민단체가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통신시장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공식 협의채널을 만든 것도 논란이다. 정부는 국회, 통신사, 시민단체 등 각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통신 기본요금 폐지, 분리공시 등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방침이다. 2세대(G), 3세대(G)는 물론 LTE 요금의 기본료 폐지까지 주장해온 시민단체가 정부 공식 협의기구에 참가함에 따라 기본료 폐지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보편요금제의 요금·데이터 제공량도 시민단체의 의견 수렴을 거쳐 정기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통신사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통신 공약 설계에 시민단체들이 깊숙이 관여했던 만큼 앞으로도 미래부와 통신사 모두 시민단체에 휘둘리게 됐다”며 “시민단체의 정책 관여가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5) "강제 인하…외국 투자자, ISD 소송 우려

법조계에선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 조정, 보편요금제 마련 등 강제적인 통신비 인하 정책이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ISD는 투자유치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불합리한 차별대우로 발생한 손해로부터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이달 현재 국내 통신 3사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SK텔레콤 44%, KT 49%, LG유플러스 46%다.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통신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강제적인 요금 인하 정책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기치 못했던 투자유치국의 정책이나 조치로 인해 생긴 투자환경 변화가 외국인 투자자의 손실을 야기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