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미녀 농사꾼'의 당찬 도전…"농업큐레이터로 새로운 농업 미래 열겠다"
경북 상주 공검면이 고향인 이정원 씨(32·사진)는 2013년 귀향해 마을 사람들과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새로운 농업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대기업 건설사와 사회복지법인에서 근무했지만 혼밥족의 생활과 업무 스트레스로 몸이 축나자 귀농을 결심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토목공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이씨는 자신은 물론 부모님도 농촌에 살지만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기존 농업과는 다른 농업과 농업큐레이터가 되겠다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내가 농사지어 먹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귀향해 작은 텃밭에 단호박 농사부터 시작했다. 그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흙을 밟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벼가 익어가는 것을 잘 몰랐었다”며 “농촌에 살면서 농업에 대해 마음을 여니까 농촌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평생 농사일을 해본 적 없는 이씨에게 농사를 짓는 것이 결코 쉬울 수 없었지만 이씨 같은 청년농부를 키우는데 관심이 있던 마을 어른들이 이씨를 도왔다. 이씨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로 하고 상주시 사벌면과 외서면에 휴경지 4290㎡를 임대했다.

이씨는 2015년에는 마을의 후계농 2명, 장년농업인 5명과 함께 쉼표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농사 경험이 일천한 이씨가 대표를 맡은 것은 기존 농업에 아이디어와 마케팅을 더해 기존농업과는 다른 농사를 마을 사람들과 같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한국에는 개념조차 생소하지만 농업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며 “브랜드가 없는 농산물에 스토리와 브랜드 디자인을 입혀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일이 보람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청년농부가 배워야 할 일도 많지만 휴경지가 늘어나고 고령화되는 농촌에 청년 농부들이 할 일도 의외로 많다”며 “청년·장년 농부들이 힘을 합치면 새로운 농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심리학을 전공해 소비자행동 패턴을 잘 아는 이 대표는 농산물 특성에 맞는 컬러와 디자인, 브랜딩을 입히는 데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미녀농부’라는 캐릭터와 브랜드를 만든 그는 지난해 7월 미녀농부 쇼핑몰도 개설해 마을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쇼핑몰 개설 6개월 만에 1억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대표는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청년협동조합 창업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고 사회적 기업가 페스티벌에서는 우수팀으로도 선발됐다.

어린이를 위한 배즙 등 가공식품 브랜드도 별도로 제작해 출시할 예정이다. 농사 규모가 990㎡(약 300평) 미만이어서 농업경영체로 등록이 안 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민들을 위해 포장지를 무료로 또는 싸게 공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상주는 평지부터 고랭지까지 다양한 환경의 농토와 농작물이 있다”며 “삼백의 고장 답게 쌀과 명주 배(곶감)뿐만 아니라 다양한 농산물에 제대로 된 가치를 더한다면 6차산업으로 불리는 농업의 미래가 다양하게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청년정책과 관련해 “3~4년간 혼자서 어렵게 창농의 꿈을 키워보니 농촌에는 창업보육센터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며 “정부가 농촌에서 영농을 원하는 청년에게도 다양한 지원을 한다면 휴경지를 줄여 농촌도 살리고 청년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촌에 휴경지가 많지만 아무 연고가 없는 청년들이 정착하기는 어렵다”며 “농업에 뜻을 가진 청년들을 받아들일 도시의 창업보육센터와 같은 플랫폼이 농촌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지만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이 대표는 “경북도가 추진하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와 같은 정책이 꼭 국가사업으로 도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주=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