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어줬더니 '물 만난' 볼락·감성돔
경남 통영과 삼천포 앞바다에서는 겨울철에도 볼락이 잘 잡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볼락은 씨가 말라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개체수가 회복되면서 어민은 물론 낚시꾼들의 사랑을 받는 어종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경남 통영시 앞바다에 국내 최초 바다목장이 들어서면서 바뀐 모습이다. 통영바다목장이 올해로 준공 10년을 맞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바다목장이 들어선 2008년 이후 볼락은 치어부터 어른 볼락까지 피라미드 생태계를 이루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볼락이 돌아왔다

집 지어줬더니 '물 만난' 볼락·감성돔
통영바다목장은 해양수산부가 1998년부터 238억원을 들여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 20㎢에 연안오염과 남획에 따른 어자원 고갈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첨단 양식장이다. 연안 바위틈을 좋아하는 볼락 습성에 따라 이른바 인공어초라는 물고기 집을 짓고 물고기가 도망가지 않도록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 가두리 양식과는 달리 해역에 인공어초와 해중림(미역 다시마로 이뤄진 바닷속 숲)으로 어장을 조성하고 어패류를 방류해 자연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볼락, 조피볼락, 참돔, 감성돔, 전복 등 6종의 새끼 어패류 883만6000마리가 방류됐다. 물고기가 살 만한 인공어초 861개와 수명이 다한 배를 가라앉힌 고선 어초 8척 등이 조성됐다. 다시마와 미역이 살 수 있는 인공해조장 12곳, 방파제 등에 사용되는 테트라포드 190개도 설치됐다.

해양과기원에 따르면 통영바다목장 볼락류의 자원량은 1998년 110t에서 2017년 1월에는 1518t으로 13배로 늘었다. 매년 길이 5~6㎝인 볼락 치어 약 45억 마리가 주변 바다로 퍼져 나간다. 명정구 해양과기원 책임연구원은 “어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14년부터는 치어 추가 방류가 더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9년 바다목장 인근에서 이뤄지는 외줄낚시 어획량은 1272㎏이었지만 6년 만에 2739㎏을 기록하며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어류마다 선호하는 집 제각각

집 지어줬더니 '물 만난' 볼락·감성돔
어류마다 선호하는 집은 따로 있다. 연구진은 어류별로 선호하는 상자형, 피라미드형 등 다양한 형태의 어초를 개발했다. 바위틈을 좋아하는 우럭 습성에 따라 어초를 기존의 것보다 좁고 어둡게 지었다. 조피볼락은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성질이 있어 상자형 어초를 설치했다.

국내에는 통영 외에도 전남 여수와 충남 태안, 경북 울진, 제주 북제주 등 4곳에 바다목장을 조성했다. 정부는 2020년까지 모두 50곳에 바다목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해양 선진국은 이미 바다목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수산업 국가인 일본은 해양목장이라는 명칭으로 1986년 오이타현에서 처음으로 도입하고 지금까지 20곳의 바다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1960년대 대서양 연어를 대상으로 목장을 세웠고 1990년대는 연어와 대구, 가재, 가리비로 사육 범위를 확대했다.

레저 바다낚시장 탈바꿈하는 바다목장

해양과기원은 지난해부터 통영바다목장에서 인근 어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레저용 바다 낚시터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한 변이 2m인 정삼각뿔 어초를 설치하면 볼락과 감성돔, 말쥐치를 모이게 하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모두 20개 어초를 설치했다.

해상풍력단지와 바다목장을 융합한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2014년부터 전북 부안과 고창 연안에 추진 중인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에 어초를 투입해 바다목장을 조성하는 방안이 진행되고 있다. 풍력발전기를 지탱하는 물속 구조물이 천혜의 인공어초 기능을 수행해 물고기가 숨을 곳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