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정치선임기자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속도전’과 ‘여론정치’로 압축된다. 각종 개혁정책은 업무지시 등 ‘대통령 명령’을 통해 신속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은 높은 지지율을 앞세운 ‘여론정치’로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당초 내세웠던 야당과의 협치,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과는 거리가 멀다.

새 정부 주요 개혁과제의 출발점은 문 대통령의 입이다. 업무 지시를 통해 속속 구체화하고 있다. 취임 후 내린 주요 지시만 해도 20여 건에 달한다. 일자리위원회 구성과 4대강 보 개방 및 정비사업 감사, 국정역사교과서 폐기, 노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을 통한 미세먼지 대책 마련, 법무부와 검찰의 ‘돈 봉투 만찬 사건’ 감찰, 세월호 기간제 교사 두 명 순직 처리 인정,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 등은 번호가 매겨진 업무지시였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4기 비공개 반입 진상조사와 가야사 연구 및 복원,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 실시, 사회 전반의 불공정 사례 개선, 조류인플루엔자(AI) 근원적 대책 마련, 농심 반영한 가뭄대책 등의 지시도 계속 이어졌다. 이틀에 한 번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시대와 치매 국가책임제 강구,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 소방관 확충과 처우개선, 유공자에 대한 합당한 예우, 제2국무회의 신설, 국가 차원의 4·3 진상규명 등을 약속했다. 새만금 개발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겠다고도 했다.

이같이 대통령의 지시가 넘쳐나는 데 대해 청와대는 “인수위원회 준비과정이 없어 초래될 수 있는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갑작스러운 정부 출범으로 조각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과하다 보니 적정성 논란까지 벌어졌다. 대통령의 지시는 명령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지시가 많아질수록 관료조직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그게 바로 전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인치와 불통의 출발점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을 상대로 여론정치를 공식화했다. ‘협치 파기’라는 야당의 반발 속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강행의 명분으로 내세운 게 여론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저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야당이 반대하지만 강 후보자에 대한 찬성여론이 우세한 만큼 임명하겠다는 논지다.

민주정치가 여론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무엇보다 야당을 진정한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 측면이 있지만 대통령도 자신이 약속한 인사원칙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협치는 대통령이 먼저 양보하는 자세를 보일 때 가능하다. 야당과 불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할 때 정치권을 비난하면서 끌어들인 게 바로 국민이었다.

여론정치는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지금 당장은 통할지 모르지만 지지율이 하락하면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만에 하나 지지율이 하락해 개각과 정부의 주요정책에 대한 부정여론이 많아지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메랑이 돼 새 정부의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수시로 변하는 게 여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지지율이 83%까지 올랐지만 막판에 6%로 떨어졌다.

여론이 판단 기준이라면 새 정부 국정운영 기조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인기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국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어도 여론이 안 좋으면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건 올바른 정부의 모습이 아니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