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결국 폐기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에 경영평가 때 부여한 가점제(100점 만점 중 3점)와 성과연봉제 미도입 공공기관에 대한 벌칙(임금 동결)을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119개 공공기관 대다수가 과거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호봉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공기업 개혁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결국 '없던 일'로
성과연봉제 폐기에 따른 후폭풍도 예상된다. 이미 지급된 1600억원 규모 성과연봉제 인센티브의 반환을 둘러싸고 정부와 개별 노조, 직원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성과연봉제 대안으로 꼽히는 직무급제 도입 방안 등을 놓고 혼란이 벌어질 조짐도 보인다.

◆경영평가 가점·페널티 동시 폐지

기획재정부는 16일 김용진 2차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어 경영평가에서 성과연봉제 관련 항목 제외, 미도입 시 벌칙 조항 폐지 등을 의결했다.

노사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종전 보수체계로 환원하거나 새로운 임금체계로 변경하도록 했다. 노사 합의로 도입한 기관은 성과연봉제 유지 또는 변경 여부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지 및 폐기 여부는 전적으로 공공기관의 몫”이라며 “다만 성과연봉제를 유지하면 경영평가의 비계량지표인 ‘보수제도 합리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OTRA 등 일부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센티브 환수 놓고 갈등

성과연봉제 후퇴로 인한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당장 인센티브 환수 문제를 놓고 갈등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은 직원들에게 ‘조기 도입 성과급’ 명목으로 약 1600억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기재부는 기존 보수체계로 환원할 경우 ‘반환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지만 정부나 공공기관, 노조가 성과급을 받은 직원들에게 “도로 내놓으라”고 강요할 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참여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인센티브 1600억원을 전액 환수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청년 고용 확대 등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커지게 됐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까지 나서 “사회적 대타협의 첫 출발”이라며 잔뜩 치켜세웠지만 대부분의 일선 노조는 직원들의 동의를 전혀 구하지 않은 상태다. 한 에너지 공기업 노조위원장은 “공공 노조의 인센티브 환수 주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생색 내기용”이라며 “직원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하기 힘들어 노조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호봉제 회귀 방조하는 정부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새로운 임금체계의 ‘대안’도 없이 성과연봉제 폐기를 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대부분은 과거 비효율의 대명사로 꼽힌 ‘호봉제’로의 회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한 ‘직무급제’를 내세우지만 이를 도입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구체적 실행 계획은 전혀 잡히지 않은 데다 공공기관 노조도 부정적이다.

한 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직무가 다양한데 직무 중요도를 판단해 줄을 세우고 연봉을 차등화하면 직원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직무급제로의 전환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이태훈 기자 hjs@hankyung.com